▲까마귀 소년 이야기를 듣고 우는 사람들
비룡소
짧은 그림책을 덮은 뒤에 몰려드는 먹먹함이란. 서서 보던 책을 샀다.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산 그림책이다. '처음'이란 말처럼 내 삶에서 유의미하게 느껴졌다.
이 그림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장면 하나 하나가 새롭게 보였다. 배움이 어려운 땅꼬마를 아이들은 바보 천치라고 손가락질하고 1학년 때부터 다섯 해 동안 담임선생님들조차 배우지 못하는 아이라고 포기한 상태다. 그런 아이를 자기 삶의 주인공을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무대로 이끌어낸다. 그게 담임인 이소베 선생님이다.
이소베 선생이 누구라도 깜짝 놀랄 만한 방법을 쓴 것도 없다. 아무리 가르쳐도 배울 줄 모르는 아이라고 몰라라 하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땅꼬마 말고는 알아먹지 못하게 쓴 붓글씨나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이지만 그 글씨를 읽어주고 귀하여 보아준 게 전부다.
얼마 전 모든 아이가 배움의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함께 출발하고 성장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을 내놓았다. 뻔한 내용이다. 좀 다른 게 있다면 기초학력 미달학생 발견을 핑계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개선하여 초등학교 1학년부터 일제고사를 부활하겠다는 것이다.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배움에 흥미를 잃은 아이를 돕겠다면서 일제고사 방식으로 분리하여 학생 맞춤형 보충지도를 권장하고 비루한 '기초학력 보장법' 제정으로 교사의 책임을 강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기초학력 책임교육은 <까마귀소년>에 있다. 이소베 선생이 땅꼬마에게 눈길을 주고 아이가 지닌 재능을 발견하고 땅꼬마의 성장 속도를 지지해주는 것처럼 할 수 있도록 학교 문화를 바꾸어가야 한다. '기초학력 보장법' 같은 법을 새롭게 만들기보다 이미 있는 초·중등교육법 제20조부터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제④항에서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했지만, 우리네 학교에서 교사들이 온전히 '학생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가. 같은 법 제⑤항에서 '행정사무와 그 밖의 사무'는 '직원'이 담당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교사들이 온갖 행정사무와 업무에 치여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 현실에 눈 감은 채로 백날 '기초학력 보장법'이니 '내실화 방안'이니 해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교실에서 기초학력 미달학생(교육부는 '학습지원대상학생'이라고 한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사후 방책으로 '개별 맞춤형 보충 학습 지도, 보조인력 지원, 대학생 멘토링, 학교 밖 언어치료사, 상담심리사, 의사' 들을 지원하겠다니 이건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본질로 돌아가 어떻게 하면 교실에서 책임교육을 다 할 수 있게 할 것인가부터 살피는 게 순서고 순리다. 교사가 '학생 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경제와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학생 하나 하나에 마음을 줄 수 있게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아닌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고도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되든 학습지원대상학생이든 늘어난다고 한다면 당연히 교사의 책임을 묻고 학력 저하를 나무라야할 것이다.
모든 교육은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다. 이오덕(1989)은 "교실 어항에 한 마리 올챙이를 기를 때, 한 알의 씨앗을 화분에 뿌려 싹이 트기를 기다릴 때, 거기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아무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삶과 믿음의 敎室, 한길사, 53쪽) 하고 말했다. 사랑의 마음이 생기자면 담임교사가 아침마다 교실에 와서 앉는 아이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게 최선의 기초학력 책임교육이다. <까마귀 소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래서 말인데, 교육부 장관뿐만 아니라 기초학력 보장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까마귀 소년>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비룡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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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일제고사' 주장하는 의원들, '까마귀 소년' 읽기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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