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탑 위에 올라섰습니다. 저 멀리로 보이는 건물은 톨레도의 상징인 알카사르입니다.
이창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의 이곳저곳을 발품을 팔아 걸었다. 좁고 오래된 골목에는 중세의 기사가 말을 매어 놓았던 고리가 보이고, 이곳 어딘가에서 여정을 준비한 '라 만 차의 돈키호테'가 떠올랐다. 실제로 톨레도는 카스티야라만차 (Castilla-La Mancha) 자치지역에 포함되어 있어서, 여기저기에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마의 전차가 지나갔던 길을 밟고, 오래된 거리를 걷고, 불편한 집에서 자려고 유럽에 오는 거잖아!"
2006년이었나? 독일 월드컵을 즈음하여 생애 첫 유럽 여행에 나섰을 때, 울퉁불퉁한 돌들이 깔린 길에서 여행 가방을 끌고 있는 손이 아파질 무렵 내뱉은 탄식인데, 여전히 유효하다.
유럽을 찾을 때면, 그들의 오래된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의 흔적들이 너무나 부럽다. 오랜 역사를 거쳐 '스페인'이라는 나라로 통치되기 전까지, 이들은 수많은 내전을 겪었을 것이고, 다른 문화로부터의 도전을 받아냈을 것이며, 스스로 다른 문화에 대한 침략을 주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그대로 남겨져 있다.
거리에 깔린 돌 하나 집을 만든 벽돌 하나하나를 조금씩 다듬어가며 보존하는 그들의 문화 인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도시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이익이 개발의 논리를 넘어선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들에게도 부동산 가치라는 것이 있을 텐데... 그들의 정책 결정 과정이 궁금하긴 하다.
"포항은 11.15 지진 이후, 도시 재생에 대한 논쟁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개발업자와 지역재생의 두 가지 주제로 양분되어 갈등하는 지경입니다. 이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요?"
"도시 재생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처럼 부동산이 소유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개발 논리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공공 건축을 이용하여 지역의 공공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무분별한 개발을 일정 부분 제어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봄, 우연히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승효상 건축가의 강연이었는데, 어느 학생이 한 질문에 대한 선생의 답이었다. 선생은 '공공 건축을 이용한 침술 처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셨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사유재산의 가치가 갖는 힘을 제어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답변으로도 들려서, 안타까웠다.
지역의 주민들이,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성을 보존하는 것에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톨레도의 도시 곳곳에서 스스로 정성껏 보존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의 가치를 영원히 후대에 전달하겠다는 시민들의 다짐이 읽혀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