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1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한일, 1965년 체제 한계 도달, 장기적 새 협력 모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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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 기자의 기사는 마치 이대근 고문과 서의동 위원의 고민을 종합한 후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를 지향하는 듯하다. 유신모 기자는 이번 갈등이 비단 징용 문제 하나, 반도체 부품 하나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식민지가 합법이었냐, 불법이었냐에 대한 한일간의 이견이라는 구조적 모순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모순에 대한 해법으로서 유 기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분쟁 해결을 의뢰하는 방법 혹은 현재 문재인 정부가 검토 중이라는 한국과 일본 기업이 공동으로 징용 문제 위자료를 부담하는 방안도 거론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일단 양국이 보복조치를 철회하고 외교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것을 중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한일간 해석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양측 모두 진지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유신모 기자 글의 핵심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단지 무역 분쟁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1965년 체제'라고 하는 한일관계의 근본적 구조가 역사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고, 자칫하면 1960년대 이후 우리가 만들어온 경제성장과 안보 틀의 근간이 훼손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하고 근본적 해법 모색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안경은 안경일 뿐... 현실은 그 너머에 있어
진보 계열의 언론사 고참 기자들이 연일 이런 기사를 쓴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람들은 흔히들 세상을 진영 논리로 보곤 한다.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정해놓고 적과 동지를 구분한다. 윤석열 검사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것을 멋있다고 하면서 사실 자기는 '문빠' '박빠'이고 누구 사진만 보면 눈물을 흘리곤 한다.
진영과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보는 안경으로서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경이다. 그 엄연한 사실을 잊게 되면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객관성을 잃게 된다. 안경은 안경일 뿐 이 안경 너머에 사실은 현실이 있다. 그것을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분석하겠다는 다짐을 놓치면 안된다.
<경향신문>의 기사들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하면 결국 진영논리를 넘어서게 된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을 놓고 자기 머리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결국 진영논리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진영 논리는 안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박찬수 논설실장: 진영논리에 빠져 객관성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