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독일, 한국, 일본 순으로 사기 발생 건수가 높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통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한국에서는 사기범죄 발생으로 기록되는 사건이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자료: 최인섭(2005)
장제우
경제학자 전강수는 <반일종족주의>가 그 전체에 걸쳐 부조적(浮彫的) 방법을 사용한다고 비판한다. 부조적 방법이란 자기 가설에 유리한 사례만 취해서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반일종족주의>의 서문은 한국인을 비하하는 인종주의에 이 수법을 구사한다(나의 한 지인은 <반일 종족주의>의 논증 방식을 '밑장 빼기'라며 고급지게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전부터 이것을 '누락의 오류'라고 여기며, 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국제 비교시 숱한 나라를 모두 거론하기보다는 몇몇 국가를 선정해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관건은 몇몇 국가를 골라 비교한 분석과 다수의 국가를 종합적으로 비교한 분석이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영훈이나 일본의 <비즈니스저널> 등은 여러 범죄 가운데 위증, 무고, 사기를 집어내고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 뒤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한데 한·독·일의 비교로부터 독일의 현저히 많은 사기 범죄를 계산에 넣으면, 또는 주요국의 천 명 당 사기범죄를 고려하면 '한국인의 거짓말 습성은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은 게 팩트'라는 이들의 주장이 그저 망상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이영훈 등의 방식으로 독일의 범죄 통계를 해석하면 (이는 물론 부적절한 행태이지만) 독일이야말로 거짓말 문화가 판을 치는 나라이며, 독일 국민은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독일인들이 그처럼 거짓말꾼이라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야 함도 물론이다.
그러나 이영훈 등은 부조적 수법의 '뇌피셜'로 한국인을 비하할 뿐 독일을 거론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기 위한 땔감을 찾는 데 혈안이 돼 기초적인 통계 조사도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제적으로'라든지 '세계 제일' 같은 표현을 동원하면서 다수 국가의 자료를 알아보지도 않고 있으니, 그 '밑장 빼기'의 용기는 가상하나 기본 자세부터 틀려먹었다.
'전 서울대 교수' 이영훈, 학자적 양심을 어디다 팔아먹었나?
앞서 범죄 통계의 국제 비교는 각국의 사법 시스템이 상이하므로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특히 사기 범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서울신문>의 기획기사 '고소·고발에 지친 대한민국'을 보면, 미국의 경우 전체 형사사건에서 사기 등 재산범죄 사건의 비중이 2012년 기준 8.4%인데, 이는 한국 32.8%의 1/4 수준이다. 한국과 달리 고소나 고발을 무조건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에서는 사기 등 분쟁의 90% 정도가 기소되기 전 다양한 중재 및 조정 제도로 해결된다. 한국에서는 사기라며 고소, 기소, 유죄가 될 일이 미국에서는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고소·고발의 접수가 매우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신문>의 기사를 이어보면, 고소·고발의 2/3가 반려되거나 자진 철회된다. 접수 완료된 고소·고발 건수가 연간 1만5000건 이하에 불과하다. 일본의 수사당국은 형사범죄를 구성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사안이나 미미한 사기, 횡령 등의 안건에 대해서는 접수나 수리를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사기 등을 신고한 피해자 측이 기소가 가능한 증거를 찾아 수사당국을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고소·고발이 수리되기 어렵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일본 수사당국의 관행으로 인해 민원인은 고소·고발에 앞서 각종 중재제도와 민사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태로 굳어졌다. 상당수는 아예 법에 맡기는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법학자 가또 마사노부에 따르면, 일본인의 반수가 자기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느끼더라도 대단한 것이 아닌 한, 비용 대 효용을 고려해 법원에 가려고 생각하지 않는다[김정호(2016) 재인용]. 결국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라면 사기 범죄로 기록될 일이 일본에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수사당국의 문턱이 너무 높은 게 일본의 문제라면, 한국은 그 반대로 고소·고발이 지나치게 용이해 남발되는 문제가 있다. 그 절차가 매우 간소하고 고소인의 편의를 봐주는 제도들이 갖춰져 있다. 반면에 사인 간의 중재 제도나 민사 소송인을 위한 제도들은 미비하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연간 고소·고발 건수가 50배를 오르내린다. 인구 수를 고려하면 100배 이상이다. <서울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2015년 전체 고소·고발 51만 2679건 가운데 사기는 43.2%로 22만 1391건을 차지했는데, 기소율은 16.2%로 3만 5911건을 기록했다. 기소된 사기 사건 중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라면 민사나 중재로 갔을 사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사법체계에는 민사 대신 형사 고소를 유도하는 요소들이 많기에 고소·고발이 과도하게 빈발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 따라 형사범죄가 아닐) 사기의 빈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고나 위증의 빈도도 높아질 여지가 상당하다. 고소의 절차와 수리가 용이하다 보니 허위 고소, 무리한 고소가 덩달아 증가하는 것이다. 법정 다툼이 빈발하는 와중에 위증 역시 늘어날 소지가 커지게 된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한 나라여서인지, 양국의 사법 여건이나 치안상황 등을 비교하는 기사나 자료들이 풍부하다. 두 나라의 상이한 사법환경이나 사회 제반여건에 따라 범죄의 성립과 통계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렵지 않게 여러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영훈은 이렇게 찾기 쉬운 자료들을 왜 제쳐뒀을까. 어째서, 한국인은 국제적으로 유명할 만큼 거짓말을 잘하기에 사기 범죄 등이 일본보다 휠씬 많은 거라며 (범죄는 아니겠으나) 사기를 쳤을까? 몸소 자신의 억측을 증명하고자 그런 것일까?
이영훈은 알고 싶지 않을 사실, '한국의 매우 적은 절도범죄'
한편, 위증과 무고, 사기를 골라내 거짓말 범죄를 논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위증, 무고, 사기는 거짓언행이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고 이것을 거짓말 범죄라고 부르는 것은 딱히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여기로만 논점을 좁히고, 더 나아가 거짓말 범죄의 국가간 우열까지 나누는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꼭 위증과 무고, 사기가 아니더라도 다수의 범죄가 거짓말 또는 부정직성과 밀접하다. 비근한 예로 국제적으로 가장 흔한 범죄로 여겨지는 절도만 해도, 이는 분명 거짓말과 똑같이 부정직한 행위이거니와 절도의 전후 과정에서 번번이 거짓언행이 나올 것이므로, 많은 경우 절도에는 거짓말이 기본으로 내포돼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한국의 절도범죄 장기추이를 분석한 최인섭(2005)에 따르면, 역대로 한국의 절도범죄 발생률이 낮게 나온다. 2004년 기준 10만 명당 발생률에서 한국 322.1건, 일본 1752건(2003), 미국 3148건, 독일 3587건, 영국 3587.7건으로 한국의 절도범죄는 유난히 적게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