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설 유허비 앞에서
임병식
이상설 유허비는 최재형 생가에서 멀지 않다. 한적한 강 옆, 유허비가 외롭게 서있다. 그는 선비였다. 을사늑약 직후(1906년) 용정으로 건너가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웠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선 특사로 활동했다. 비록 무위에 그쳤지만 조국 독립을 위한 치열한 여정이었다. 이상설은 1908년 우수리스크로 근거지를 옮겨 마지막 불꽃을 살랐다. 마흔 여덟, 삶을 마감하면서 남긴 유훈은 비장하다. 식민지배에 있는 고국에 돌아갈 면목이 없다며 화장을 지시했다. 유골은 라즈돌리노예(솔빈) 강에 뿌려졌다. 강은 흘러 동해로 이어진다. 그의 유해가 끝내는 고국에 닿았기를, 그래서 넋도 평온하기를 기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 언덕에 서면 루스키 섬이 보인다. 섬에서는 푸틴이 심혈을 기울이는 동방경제포럼이 열린다. 푸틴은 동방정책을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신한촌은 해외 독립운동사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최재형, 이상설은 물론 홍범도, 이동영, 이동휘, 유인석 등 내로라하는 독립지사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해외 독립운동 중추기지였다. 1937년 강제 추방되기 전까지 1만여 명이 살았다. 낯설고 물선 이곳에 고려인들은 민들레처럼 뿌리내렸다.
신한촌기념탑 비문은 비장하다.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고려인들의 상처를 위로하며, 후손들에게 역사인식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3.1운동 80주년을 기념해 1998년 세웠다. 고려인 3세 이 베체슬라브씨가 20여 년째 관리하고 있다. 이씨는 지금 혼수상태다.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일보 유승호 발행인은 "평소 이씨에게 농담처럼 '내가 뒤를 잇겠다'고 말했다"면서도 "하루속히 병상에서 일어나길 기원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남편을 대신해 기념탑을 지키는 이씨 아내의 얼굴은 그늘졌다. 떠나온 뒤에도 오래도록 눈에 밟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