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밑에 있어야할 봉선화가 조용한 사찰(寺刹)의 한쪽, 수렁에 빠져 있다.
엄남희
'울 밑에 있어야할' 봉선화가 조용한 사찰(寺刹) 한쪽, 수렁에 빠져 있다.
기다란 저 끄트머리 오른쪽의 꽃밭으로부터 씨앗이 떨어져 수로를 따라 구르다가 멈춘 곳, 그곳이 이 봉선화의 터전이 되었다. 한줌 남짓한 흙에서 뿌리를 내렸고, 빛을 찾아 사각 틈새 비집고 올라와 꽃이 피었다.
가느다란 대궁에 초록빛 열매주머니 주렁주렁 무겁게 달린다 해도, 좌우 양 옆으로 지지대가 되어 줄 튼튼한 스틸 그레이팅이 있으니 비바람에 쓰러질 염려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갑한 심정은 어쩔 수 없으리라. '너도 참 고달프겠구나!' 어쩐지 처연한 심정에 애처롭게 바라보며 생각에 젖다보니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날 여름철에 / 아름답게 꽃필적에 (생략)"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다. 이 노래의 3절에는 한겨울 찬바람에 형체가 없어져도 화창한 봄날에 환생키를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독립을 갈망하는 민족의 염원이 가득하다. 일제강점기에는 반일 사상의 노래라 하여 금지곡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불러봤을 애창곡이다.
봉선화는 줄기와 잎에 많은 밀선(蜜腺, 꿀샘)이 있어 개미들이 무척 좋아한다. 허리를 굽히고 눈높이를 낮추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봉선화 줄기 위로 연신 오르내리는 개미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가까운 곳에 자잘한 흙 알갱이 수북한 사이로 구멍 뽕뽕 뚫린 개미집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 봉선화는 언제부터 이 땅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기록에도 있는 걸 보면 무척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친숙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봉선화'로 되어 있는데,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봉숭아'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봉선화'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그를 따르는 것이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