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고 유치준(마산)씨를 '부마민주항쟁 사망자'로 인정한 것과 관련해, 6일 오후 창원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환영 입장'을 밝혔다.
윤성효
"누구도 원망 않겠습니다. 모두를 용서하고 싶습니다. 이런 비극적 죽음은 이제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합니다."
국가로부터 '부마민주항쟁 사망자'로 인정을 받은 고 유치준(1928~1979)씨의 아들인 유성국(60)씨의 말이다. 유씨는 6일 오후 (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회장 최갑순)와 함께 경남 창원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감사 인사'를 했다.
하루 전날인 5일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아래 진상규명위)는 고 유치준씨에 대해 '부마항쟁 사망자'로 첫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유씨가 사망한 지 40년만의 일이다.
부마항쟁 당시 사망자가 있었다는 말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2011년 9월 11일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유씨의 유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고인은 '부마항쟁 사망자'로 인정 받지 못한 상태였다.
고인은 부마항쟁 당시 노동자였으며 1979년 10월 19일 오전 5시경 옛 마산시(창원) 산호동 소재 새한자동차 앞 노상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진상규명위는 고인의 '사망 경위'과 당시 경찰의 '사망 사실 은폐', '부마항쟁과 연관성' 등을 따져 '부마항쟁 사망자'로 인정했다.
유씨는 지금까지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피해 사실 300여건 가운데 유일한 사망 인정이다. 부산과 마산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아직 관련 유족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유성국씨는 "지난 40년간 철저히 은폐되어온 아버님의 억울한 죽음이 지금이라도 밝혀진 데 대해 진심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이제는 우리 모두 화해하고 용서하며 이런 공권력에 의한 비참한 죽음이 다음 세대에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님이 희생자로 공식 인정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무 기쁠 것 같았지만, 막상 저의 마음은 더 아려왔다. 아버님에 대한 저의 미안함과 억울한 죽음임을 좀더 일찍 밝히지 못한 죄책감이 더 컸다. 기뻐할 수도 없이 가슴이 더 저려왔다"고 밝혔다.
유성국씨는 "이제는 저희 유족들이 40여년간의 아버지에 대한 고통과 죄책감에 훨훨 벗어나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40년 동안 구천에서 떠돌았던 아버님의 영혼이 이제 저승에서 편안히 지내시길 간절히 바란다, '40년간 고통 속에 살아온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는 국가 공식기관의 사과를 40년간 고통스러웠을 아버님 영혼에 전하고 싶다"며 "다시 한번 여러분의 관심과 노력에 유족을 대표해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고 유치준씨는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45세 때 남편을 잃은 유성국씨의 어머니(85)는 40년간 고인의 명예회복의 염원을 안고 살아왔다.
유성국씨는 "어제 진상규명위 결정 소식을 어머니한테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는 진짜냐고 계속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제가 '이제 다 끝났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울먹이셨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