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첫날인 12일 오후 서울역에서 귀성객 등이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다시 명절이 돌아왔다. 명절 때마다 언론이 '민족 대이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많은 이들이 친척을 보러 가는 풍경을 보도하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명절에 어딘가를 가는 건 아니다. 굳이 고달픈 교통체증을 뚫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부터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까지...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명절에 집에 머무르거나 다른 곳으로 피신하곤 한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 어딜 가지 않거나, 가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보러가는 2030 세대 6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위주로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에 이들이 전체 20, 30대를 대변한다고는 할 순 없겠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본다. 이것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혹은 보내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8명 모두 익명이고, 성별은 따로 표기하지 않았지만 남녀 비율을 거의 비슷하게 잡았다.
[질문] 명절에 뭐 하세요?
A(25)는 3~4년에 한 번씩 친척을 보러간다. 명절을 친척들과 같이 보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면 굳이 그 정도 간격을 둘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A는 지극히 현실적인 말을 해줬다. "다들 생업이 바쁘기도 하고, 집안 내에서 돈 문제가 얽히는 바람에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라고.
친척이 껄끄럽게 느껴지는 데에는 정치 성향의 차이와 A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한몫했다. 본인이 친척들을 통틀어서 가장 대학을 잘 간 경우라서 그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어른들이 많았다고.
명절 밥상에서 모든 관심이 자기한테 쏠리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이런 기대에 부담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글 쓰는 걸 대학 전공으로 삼은 A는 초강수를 뒀다. 출판사 계약서를 들이밀었더니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B(33)는 매년 고향에 내려가곤 했다.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명절을 보냈느냐'고 묻자, "한 번 거른 적이 있지만 그마저도 가족여행이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안 가게 될 것 같다고 한다. 왜 그런가 하니, 올해 말에 동생이 결혼한단다. 지난해 말 동생이 결혼소식을 전한 뒤로, 부모님은 B에게 얼른 결혼하라고 재촉을 해 왔다.
이번 추석도 잔소리가 절정일 것 같다면서 걱정하는 B는 내년부터는 차라리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하겠다는 핑계가 그나마 제일 좋지 않을까 싶었다"는 것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것도 B가 친척들을 더 많이 보게 되는 데에도 한몫 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멀리 서울에 살면 자주 못 봐도 이해를 해주지 않겠느냐며.
5~6년 전부터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 C(22). 그는 "가족 개념이 희미해졌다"라고 말한다. 부연 설명을 부탁하자 직계인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친동생을 제외하고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친척들이 가족이라고 느껴질 만큼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듯 젊은 세대는 다소 친척들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지난해부터는 책을 읽거나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며 남는 시간을 활용한단다.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D(26)는 명절이 주말과 붙어 있으면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물론 교회 일이 아니어도 진학, 취업, 결혼계획 등 친척들의 질문 세례가 부담스러워서 피하게 되는 것도 큰 이유로 작용했다. 또 부모님이 교육업에 종사했던 것 역시 중요한 원인이었는데, 다른 누구와 지속적으로 비교하면서 자존감을 깎아먹는 일이 빈번했다고.
또한 집안이 보수적인데 명절에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는 경험 역시 D에게 있었다. 보수적인 탓에 여자들은 집안일을 하는 반면 남자들은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모습도 항상 보였고, 언제부턴가 그 장면이 불편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명절에 고향을 가지 않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다 같이 밥을 해먹고 보드게임을 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명절 '버텨내는'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