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진정한 사과는 억울한 시민의 진실을 밝히는 데 대한 공정한 역할, 공평한 기회, 정의로운 재심과정에 적극 협조할 때만이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변상철
그는 자신의 재심이 열리는 순간에도 크게 기뻐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동료의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헌우씨는 박상은씨와 함께 옥살이한 무기수다. 1968년 군 복무시 소대원들을 데리고 월북하려던 소대장을 저지하다 복부에 총상을 맞고 쓰려져 대수술 끝에 15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자신이 소대원들을 데리고 월북하려 했다는 누명이었다.
"이헌우 같은 사람도 너무 억울해. 그런 사람들도 '지금 여기에' 같은 단체에서 꼭 도와줘요. 그 사람 죽기 전에 억울한 것이라도 죽어야지. 한평생 결혼도 못 하고 그렇게 죄인으로 살았는데."
"예, 선생님 진실이 밝혀지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제가 이헌우 선생님 살고 계신 김해에 한 번 내려가서 찾아뵐게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세상이 미쳐 날뛰던 시대에 여기저기서 미친 칼날에 다치고 죽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 광란의 시대에 겨우 목숨부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 광란의 칼끝이 나를 향했다면... 어쩌면 나에게 올 수도 있었던 광란의 칼이 나를 대신한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면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서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여기서 과거 사건을 들춰내는 나의 일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자 그들에게 진 빚의 청산 절차인지 모른다.
이제 검찰의 항고가 없다면 이른 시간 내에 재심을 위한 재판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공소 유지를 위한 증거 역시 검찰에서 제시해야 한다. 개인, 민간인, 시민이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은 늘 지형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다. 핵심적 증거인 기록은 소위 고문, 가혹행위 등의 범죄를 저지른 국가에 있고, 개인은 그 기록을 공개하라는 청구를 해야만 볼 수 있다. 그나마 모든 기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일부의 기록이다. 대부분의 기록은 국가안보,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해 개인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을 범죄자로 만들 때는 온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언론 등을 동원하던 자들이 이제는 과거 사건이 국가기밀이나 안보에 해당한다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국가의 진정한 사과는 억울한 시민의 진실을 밝히는 데 대한 공정한 역할, 공평한 기회, 정의로운 재심 과정에 적극 협조할 때만이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검찰개혁의 핵심은 과거사 재심 사건을 올바른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다루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처럼 재심에서 무죄 등의 선고가 난 사건에 대해서 별다른 항소 이유 없이 '불복'이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항소했던 사례들이 부지기수이다. 무리한 기소와 항소 남발이 검찰의 전횡처럼 이뤄지고 있었다.
이제 검찰은 합리적 판단과 이성적 법리로 적어도 과거사 사건의 재심에서 명백한 재심 결정 사유가 밝혀진 경우, 그리고 그것이 사법부에 의해 불법이 확인되었다고 결정된 경우 무리한 항소를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은 국민의 눈높이와 일반 국민의 법 감정 내에서의 수사권, 기소권 행사이다. 부디 박상은씨 재심 과정에서 이성적으로 재판에 임하는 검찰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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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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