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들이 시민군들에게 주기 위해 밥을 짓고 있다.
5.18기념재단 자료사진
시민들의 의식은 전혀 달랐다.
병원마다 부상자가 넘치고, 언제 다시 계엄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도 부족한 생필품을 나누고, 상부상조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한편 시민군을 외곽지역에 배치하여 계엄군의 재진입에 대비했다.
광주시민들은 매점매석을 방지함으로써 그 시점에서 이미 시내에 반입되어 있는 생필품을 최대한도로 활용했다. 쌀집에서는 한꺼번에 두 되 이상의 쌀을 팔지 않았고 담배가게 주인은 한 사람에게 한 갑씩만 담배를 팔았다. 슈퍼마켓이나 식료품점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는 시민군과 학생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은 시내의 치안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유 없는 파괴행위를 금지시키고 경찰서와 은행, 관공서와 경찰간부의 관사 등 주요 시설물에 경비조를 배치했으며, 각종 차량에 번호를 붙여 임무를 분담시켰다.
당시 78번까지 등록된 시민군 차량이 시민들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였는데, 1번부터 10번까지는 도청~백운동, 11번부터 20번까지는 도청~지원동, 21번부터 30번까지는 도청~서방, 31번부터 40번까지는 도청~동운동, 41번부터 50번까지는 도청~화정동을 오가며 시민들을 수송하였고, 소형차량은 연락과 환자수송을 맡았다.
물론 5월 21일 오후 광주공원에서 결성된 시민군은 공수부대가 재진입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지원동, 학운동 등의 외곽지역 요소요소에 10개 조의 경계병을 배치했다. 시민들은 학생과 시민군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보내주었다. 식품점과 슈퍼마켓, 약국 등에서는 음료수, 빵, 드링크를 무상으로 내놓았고 주부들은 동네별로 쌀을 모아 김밥을 만들었다. (주석 10)
주석
8> 정석환, 「비화, 5ㆍ18당시 정보부전남지부장 정석환비망록, 전두환은 공수부대장에게 진압격려금 내려보냈다.」, 『신동아』, 1996년 1월호, 여기서는 강준만, 앞의 책, 143쪽, 재인용.
9> 이윤재, 『정치지도자의 정신분석』, 11쪽, 태양문화사, 1978.
10> 정상용 외, 앞의 책, 241~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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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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