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봉 정상에서 만난 기암괴석
이용원
큰 바위 여러 개가 마치 정교한 계획에 의해 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처럼 툭툭 던져졌다. 바위 모양새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거북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코끼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의 얼굴이나 도깨비 얼굴처럼도 보인다. 바위 하나하나가 모두 범상치 않으나 중앙 부분에 놓인 바위 세 덩어리는 특히 그렇다.
언뜻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고인돌 형태처럼 기둥석 두 개 위에 거대한 판석이 올라가 있다. 기둥 노릇을 하는 바위는 서로 다른 바위 두 개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 하나가 둘로 갈라진 것처럼 보인다. 갈라진 그 틈은 성인 남자 한 명이 바듯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그 통로는 급한 경사를 이룬다.
그 틈 안으로 들어서면 통로 안에 새겨 둔 글자를 발견할 수 있다. '皇皇上帝位 性性主人翁' 의미는 전혀 모르겠지만 무언가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옥황상제에게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성성주인(性性主人)이라는 별호를 쓰는 노인이 새긴 글자라는 추정을 해 본다. 비교적 선명한 이 글자 말고도 큰 바위 곳곳에는 해독이 불가능한 문자가 여러 개다.
문화재청은 이곳에 쓰인 글을 '조선시대' 것으로 짐작한다. 또 이 유적 부근에서 오래된 토기 파편이 발견되는 점을 들어 유적의 유래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정한다. 무엇인가를 기리거나 기원하던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그리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바위 곳곳에는 구멍 흔적도 여러 곳이다. 언제 팠는지 모르겠지만 인위적으로 파놓은 것으로 보이며 굵은 대나무 기둥을 꽂기에 적당한 크기다. 차일을 치거나 깃발을 꽂기 위한 기둥자리가 아닌가 싶다.
신선바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문자는 호신발(號神發)이다. 낯선 글자다. 예전에 얼마나 많이 행한 행사인지는 모르겠으나, 호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호'를 크게 외치며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일종의 의식이란다. 근래에도 이곳에서 자신이 받은 호를 외치며 기운을 받으려는 행사가 간혹 열리는 모양이다.
공증을 받은 바는 없지만 신선바위에 새긴 글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기를 거치며 다양한 일화를 남긴 근대 주역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야산 이달 선생과 대오재 송을규 선생의 흔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오재 선생의 고향이 바로 이곳 비룡동이고, 야산 이달 선생도 고향은 경북 김천이지만 대전을 비롯한 충청권에 많은 자취를 남긴 분이다. 주역은 잘 모르지만 야산 이달 선생과 1900년대 우리나라 4대 기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지리산 문도사의 수제자로 알려진 대오재 송을규 선생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바위가 지닌 범상치 않은 기운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곳 큰 바위에 올라 북쪽 방향을 바라보면 대청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대청호가 생기기 전에는 금강이 굽이굽이 흘렀을 것이고 그 주변 비옥한 땅과 험하지 않은 산에 기대어 크고 작은 마을이 여럿이었을 터다. 그 마을 주민이 농사를 시작하기 전, 아니면 수확철 추수를 끝마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선봉에 올라 만나는 바위 군락에 특별한 감흥이 일었다면, 길을 나선 김에 조용히 비름들 마을도 다녀오기를 권한다. 신선봉에서 비룡동 쪽으로 내려와 큰 길을 건너 들어가면 '비름들'이라는 마을에 닿을 수 있다. 멀지 않다. 비룡동에 속하는 비름들 마을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안평이씨정려문을 만난다. 그곳이 마을 초입이다.
바위가 주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