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권우성
"이 책을 냈을 때 내가 엄청 욕은 먹겠지만 내부고발 비슷하게 했으니 언론사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긴 힘들 거라고 순진한 기대를 했다. 그런데 거대한 구조적 물결을 막진 못했고 더 심해진 경우도 있다. '저자로서 나는 실패했구나' 생각했다."
2002년 나온 <경제뉴스의 두 얼굴>(개마고원)은 당시 경제 보도를 둘러싼 언론사와 재벌, 정부, 광고주 등 경제 권력의 유착 관계와 은밀한 거래를 고발해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 뒤 17년이 흘렀지만 언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호 보도 참사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보도를 계기로 기성 언론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보다 강력한 언론개혁 요구에 직면했다.
과연 <경제뉴스의 두 얼굴>을 쓴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원장의 '내부고발'은 실패했을까?
그 뒤 제정임 교수는 14년차 기자에서 언론개혁 '레지스탕스'를 키우는 교육자로 거듭났다. 지난 10여 년 '레지스탕스' 200여 명을 배출한 제 교수가 생각하는 언론개혁 대안이 바로 언론사 내부에서 개혁의 밀알이 될 예비 언론인 육성이었다.
"우리 목표는 정의롭고 실력 있는 기자를 만드는 거다. 정의로움이란 사회가 언론에게 요구하는 역할, 즉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대변하고 사회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론장 역할을 하는 거다. 무조건 약자 편을 들라는 게 아니고 약자는 목소리가 잘 안 들리니까 큰 스피커를 달아줘서 그 사람의 눈물과 고통, 한숨을 사회가 알게 하고 문제를 해결하게 하자는 거다. 취재 보도의 기본기뿐 아니라 멀티미디어나 새로운 세대가 요구하는 실력까지 짱짱한 기자들에게 정의감을 탑재해서 잘 길러내면 언론의 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이른바 '세저리'라고 부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개원 11주년 동문회가 열린 지난 11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한 커피전문점에서 제정임 교수를 만나 2시간 남짓 언론개혁 이야기를 나눴다.
[#1. 언론개혁의 길] "언론을 흉기로 만드는 출입처 제도, 하루빨리 깨져야"
- 요즘도 언론이 '동네북'이다. 조국 사태 국면에서 검찰개혁과 더불어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시민 목소리가 터져 나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많은 이들이 언론이 저렇게 나가면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충격적으로 재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때 '기레기'라고 욕을 많이 먹었는데 이번엔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를 하면서, '카더라'와 익명 취재원을 인용해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일가족을 난도질하듯 보도하는 것을 보고, 조국 지지 여부를 떠나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
제 교수는 "최소한의 근거조차 없는 의혹 제기 보도가 많았고 (조국 딸이) 무슨 차를 탄다더라 하는 가십성까지 대서특필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만약 내가 타깃이 된다면 난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같은 공포감도 느꼈다"면서 "조국 보도를 계기로 언론이 엄청난 인권 침해가 될 수도 있고 민주주의에 제동을 걸 수도 있는 사안에 가해자의 하나로 등판한 게 아닌가, 라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나 조국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에 공감하는 비율이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출입처 제도와 검찰 발표 받아쓰기 같은 기존 언론사 취재 관행도 비판받고 있다. 엄경철 KBS 신임 보도국장은 출입처 제도 폐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 출입처 제도 폐지가 실현 가능하다고 보나.
"출입처를 하루아침에 다 없애는 건 지금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겠지만, 엄경철 KBS 보도국장이 어떤 식으로든 언론사 차원에서 출입처 중심으로 돌아가는 취재관행을 깨보겠다는 선언을 한 건 큰 의미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기자실 폐쇄 시도도 방향은 맞았지만 정부가 주도하면서 언론 탄압처럼 비춰 성공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가 KBS뿐 아니라 모든 언론사로 확산돼야 한다."
제 교수도 지난 1986년부터 경향신문과 국민일보에서 14년간 기자로 일하면서 출입처 제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햇병아리 시절 검찰을 몇 달 출입한 적이 있는데, 30년이 지났는데도 기본적인 취재시스템이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나 보고라인에 있는 부장검사 입에 의존하다 보니, 내게 한마디 해줄 사람과 술 먹고 사우나 가고 형님동생하면서 끈끈한 유대가 없으면 하나도 건질 수 없어 기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검찰과) 유착할 수밖에 없다."
제 교수는 "기자가 출입처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으면 한쪽 논리에 세뇌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기업 출입 기자가 홍보 담당 임원과 친해지려고 같이 밥 먹고 따라다니다 보면, 노사 갈등이 생겼을 때 누구 편에서 기사를 쓰겠나"라고 물었다.
"출입처 시스템에서 정보를 주는 쪽에 길들여진 기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쪽 논리에 너무 익숙해져, 그쪽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쪽에 편중된 기사를 써왔다. 이게 우리 사회에서 직업병, 노동권 침해 문제가 해결 안 되고 억울한 노동자들이 많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검찰뿐 아니라 경제부 등 많은 영역에서 출입처 시스템이 하루빨리 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제 교수는 "출입처 제도 때문에 많은 유능한 기자들이 기자실에 앉아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필경사가 되고 있다"면서 "정작 현장에서, 직업을 못 찾아 고통 받는 실업자나 방 한 칸 없어 고통 받는 사람들 문제를 취재해서 기사를 쓸 인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후배들이 편집국장이 돼서 조언을 듣고 싶다고 찾아올 때마다 출입처를 깨고 남들 다 쓰는 기사에 대한 부담을 스스로 덜어내라고 얘기한다.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나 산업재해 문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갑질 문제처럼 남들이 잘 안 쓰는 주제에 인력과 자원을 배치하라고 조언한다. 탐사보도팀을 만들어 늘 문제가 반복되고 근본적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를 뿌리까지 뽑는 고발 기사를 쓰면, 똑같은 기사 일색인 언론사에 식상해 있던 독자들이 그 매체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이게 언론사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유튜브 방송이 문제가 아니라 기성언론 신뢰도 하락이 문제"
종편이나 신문사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신뢰도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KBS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방송 <알릴레오> 간에 정경심씨 자산관리인인 김경록 인터뷰를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을 당시, 많은 언론 소비자들은 KBS보다 유튜브 방송을 더 신뢰했다.
"<알릴레오>에 사람이 모이는 이유는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확인해주는 편안함도 있겠지만 지상파나 기성언론에서 듣거나 볼 수 없는 깊숙한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는 그 매체 자체의 매력 때문이다. 유튜버나 팟캐스트처럼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뉴미디어가 늘어나는 건 걱정할 필요 없지만, 기성언론의 신뢰도와 영향력이 떨어지는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알릴레오와 홍카콜라에서 서로 상반된 얘기를 할 때 KBS에서 잘 정리해 준다든가, 잘 훈련된 직업 기자들이 있는 언론사에서는 불투명하거나 모호한 논란들을 팩트체크해 믿을 수 있는 내용으로 정리해 주거나 말이 되게 설명해주는 '센스메이커'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팩트체크 기능은 못하면서 허위조작정보를 스스로 생산하는 언론도 있어 독자들이 유튜버로 떠나는 걸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성 언론이 스스로 믿을 수 있는 '크레디트(이름)'가 되겠다는 자각과 자존심 회복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유튜브뿐 아니라 그 사이 포털을 비롯해 SNS, OTT 등 인터넷 미디어 기업의 영향력은 이미 언론사를 뛰어넘었다. 최근 네이버에서 제휴 언론사에 모든 뉴스 광고 수익을 배분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언론사의 포털 종속이 더 커질 거라는 우려도 있다.
"네이버 안에 모든 언론이 들어가서 조금 더 많은 몫을 배분받으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뉴욕타임스>를 보려고 '즐겨찾기' 하지 어떤 포털을 거치진 않는 것처럼, 우리 언론사도 자기 고유의 브랜드네임을 갖고 독자들의 충성도를 활용해 후원금이나 독자 구독료를 받아서 광고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언론사마다 출입처에 의존해 똑같은 기사를 쓰는 '붕어빵' 시스템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취재해서 깊이 있는 보도를 하면 독자들이 '즐겨찾기' 할 거다."
[#2. 제정임의 길] 내부고발자에서 언론개혁 교육자로
제 교수는 지난 2000년 10년 넘게 몸담았던 국민일보를 떠나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그 뒤 '내부고발' 성격의 <경제뉴스의 두 얼굴>을 썼고, 끝내 언론계로 다시 돌아오진 않았다.
- 2000년 당시 언론계를 떠난 이유가 궁금하다.
"국민일보에 오래 다녔던 이유는 종교면 외에 다른 분야는 기자가 옳다고 믿는 대로 쓰라는 기조였기 때문이다. 당시 경제부 기자로 일하면서 기명 칼럼도 갖고 있었는데 정부, 재벌, 전문가 등 누구든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99년 무렵 새로운 사장이 오면서 기자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강조하며 쓰는 걸 제약하고 열심히 하는 기자를 지방 발령을 내는 등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당시 사표 내고 나가는 것도 의사 표시라고 생각하고 아예 그만두고 대학원 가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더는 내가 옳다고 믿는 걸 쓸 수 없는 상황이라 나왔다."
지난 2007년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제 교수는 언론사로 돌아가는 대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을 선택했다. 제 교수는 지난 2008년 당시 이봉수 세명대 교수, 남재일 현 경북대 교수 등과 함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아래 세저리)을 만들었다. '세저리'는 일반적인 언론대학원과 달리 현업 언론인 양성이 목표다. 매년 20~25명씩 지난 10년 동안 230~240명 정도가 세저리를 졸업했고 이 가운데 210명 정도가 언론계, 홍보업계 등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