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칸센 승차권
박도
교토역 신칸센 대합실은 열차 객실마다 달랐는데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거의 소셜미디어를 보고 있었다. 한국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다. 이전 일본 방문 때는 거의 대부분 승객들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제 일본도 세계의 조류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대합실 한쪽 구석의 탁자엔 일본 젊은이들이 노트북을 꺼내 놓고 잠깐의 시간에도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었다.
플랫폼으로 나가자 신칸센은 3분간 배차로 모두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대인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우리는 이런 초고속 시대에 살고 있다. 열차도, 사람도, 시계 초침처럼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적응치 못하면 낙오하기 마련이다.
오전 10시 2분에 출발한 열차는 1분 1초도 틀림없이 낮 12시 12분에 정확히 도쿄 시나가와역에 멈춰 섰다. 나는 10여 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은 셈인데, 그때보다 역 언저리 일대에 고층건물이 무척 늘어나 보였다.
시나가와역
이곳은 도쿄만 부두와 가까운 곳으로, 해방 전에는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건너온 조선 사람들의 밀집 지역이었다고 한다. 젊은 날 나라를 잃고 상심하던 나의 할아버지는 동학계통의 보천교에 몰입해 전재산을 헌납했다. 그 뒤 살 길이 막막하자 혼자 도일했다. 아마도 이곳 부두에서 생계 터를 마련한 뒤 가족을 불러들였던 모양이다.
"너희 할아버지는 하루 일이 끝나면 정종을 두세 잔 마시는 게 낙이었는데, 돈을 아낀다고 한 꼬뿌(컵)밖에 마시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는 자주 영감을 추억하면서 내게 당신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아마도 시나가와 일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본인들에게 온갖 차별과 멸시를 당하면서 홀치기, 나토장사, 고물상 등 갖은 고생을 다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신칸센 객실에서 유년시절 할아버지·할머니의 추억을 더듬었다. 그 사이 물 찬 제비 같은 신칸센 열차는 어느 새 시나가와역에 닿았다.
역 앞에 마련된 전세버스를 타고 도교만 일대를 둘러 식당가로 갔다. 차창 밖 도쿄 시내와 부두를 두리번거리는데, 바다에는 부유물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세계 어느 항구를 가나 부두에는 갯냄새와 기름 냄새가 나거나 바다에는 이런저런 부유물들이 떠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의 도쿄만 일대는 그런 냄새도, 부유물도 보이지 않는 청정해역이었다. 게다가 하늘조차도 투명했다. 그저 일본인들의 환경보호 정신과 청결에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