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문갑 이제는 폐기처분 위기에 놓인 엄마의 문갑은 내가 맡기로 하였다. 나중에 나는 이 문갑을 보면서 우리 엄마를 추억할 것이다.
변영숙
하루는 엄마가 마냥 안방의 장롱을 보고 있길래 분위기 전환삼아 "엄마, 저 공작새 진짜 예쁘네, 저기 토끼도 있네?" 하고 한껏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엄마는 "그걸 여태 못봤어? 저기 다람쥐 있는 건 봤니?" 하신다. 그 목소리에는 '그걸 인제 알았니?' 할 때의 으쓱함 같은 것이 묻어났다. 엄마와 나는 한참 동안 장롱에서 해와 달, 절구 찧는 토끼와 다람쥐, 오리 등을 찾아냈다. 꼭 유치원생들처럼. 그러는 사이 엄마 기분도 점차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개장을 한참 들여다 봐서인지 자개 문양들이 보면 볼수록 예뻤다.
"엄마, 엄마 장롱 진짜 이쁘다. 볼수록 예뻐. 엄마 안목이 참 좋으셨네."
"그럼, 이쁘지. 처음 들여 놨을 때에는 얼마나 이뻤는데…"
"엄마, 저 장롱 살 때 참 좋았지?"
"좋았지… 그때 집도 새로 짓고… 니들도 다 잘 자라고…"
"그랬겠네. 엄마 참 대단해. 아버지랑 시골에서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나와 하꼬방집에서 살다가 번듯한 집도 짓고, 애들 다 대학교육 시키고… 난 엄마처럼 못했을 것 같애."
"으이, 하꼬방집 살 때, 그 일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 하루는 쌀이 똑 떨어져서 저녁밥 지을 쌀도 없는 거야. 주인집에 좀 빌려 달라니까, 뭘 믿고 빌려주냐면서 안 빌려주더라고. 니들은 배고프다고 난리지. 할 수 없이 가게에 가서 외상으로 사왔어. 그때 처음 외상이라는 것도 해봤지…."
엄마의 목소리에는 아련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엄마, 그런 일도 있었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시간 속에는 힘든 시간이 참 많았구나…' 이사올 때 엄마는 '애써 이룩한 모든 것'을 두고온 허망함과 상실감에 내내 힘들어했던 것은 아닌지. 그런데 당시에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언젠가 엄마한테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 엄마 참 열심히 살았어. 참 많은 것을 해냈어. 우리 엄마 참 장해…"라고. 그리고 "엄마 정말 감사해"라고.
이제는 내가
이제 엄마는 새 매트를 위해 문갑을 내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쿨'해졌고 아파트 생활에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괜찮지 않은 것 같다.
엄마의 손때와 추억이 가득한 물건을 차마 아파트 재활용센터에 내다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내 곁에 없을 때에도 내 집에 두고 오래오래 엄마를 추억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문갑을 내 집으로 옮기려니 그것도 일이라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문갑은 아직도 엄마네 거실에 놓여 있다. 내 솔직한 심정은 문갑이 오래도록 엄마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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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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