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홍 전 미래에셋생명 사장의 군대 시절
최미향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형님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와 과외를 시작했고, 조 회장은 자연스레 형님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갑자기 머리에 번개가 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그는 '이렇게 살다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부모님께 휴학 얘기를 꺼냈다고 했다.
"고2 학생이 공부를 한답시고 휴학을 한다 하니 어떤 부모님인들 허락하시겠어요? 당연히 반대하셨죠. 저는 등교를 하지 않고 지금의 서산시 호수공원인 '똥방죽'에 앉아 낚시를 하며 버티기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결국 저희 부모님도 저를 이기지 못하고 휴학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는 그길로 태안군 백화산 아래 냉장골에 있는 작은 암자로 들어갔다.
"당시는 속된말로 사전을 뜯어서 씹어 먹을 때였잖습니까?(웃음) 정말 그곳에서 굴을 파는 두더지 마냥 국·영·수만 죽도록 팠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서산에 위치한 서령고등학교에 다시 복학을 했고, 그해 전교 1등을 해 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전설적인 이력으로 인해 당시 서산의 서령고에서는 휴학 바람이 불 정도였다고 했다.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그해 조한홍 회장은 대학에 낙방하는 고배를 마셨고, 다음해 봄 드디어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기쁨 뒤에 오는 아픔은 뭔지.... 당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급속도로 어려워져 등록금 낼 돈이 없었습니다.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버지 지인 께서 '어렵게 좋은 대학에 합격했는데 아깝다'며 등록금을 내 주셨죠. 저에겐 잊지 못할 은인이십니다."
그 즉시 바로 휴학을 하고 서산으로 내려와 다방에서 커피도 끓여주고 카세트테이프도 틀어주는 일명 '바리스타&DJ' 일을 하게 된 조 회장. 그리고 1년 후 군대를 갔고, 제대해 또 6개월 간 다방에서 주방 일을 하며 학비를 모아 그 다음해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고려대 정문을 밟게 됐다.
부모님은 정말 열심히 일하셨지만 모이는 돈 한푼 없이 어려움은 계속 이어졌고, 궁여지책으로 빌린 일수 돈 이자가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 결국 그의 집은 파산을 맞고 말았다.
그때 그의 형님은 행정고시 1차에 합격을 했고 2차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는데, 집안이 어렵다보니 고시공부를 포기하고 직장생활로 접어들었다.
"형님 회사에서 사택을 내준 덕에 우리 열 식구는 그곳에서 살게 됐습니다. 어쩌면 그때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것들이 가족 간의 사랑을 더욱 단단히 묶어 주었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3년 늦게 대학을 졸업한 조한홍 회장은 대학 생활 동안 동기들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하고 졸업했다고 한다. 훗날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정아 사건'이 터졌는데, 오죽했으면 동기생 중 한 명이 "학창시절 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혹시 너도 가짜 졸업생인가 의심돼 몰래 학적 조회를 해봤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단다.
그가 잡은 첫 직장은 럭키증권(현 NH투자증권)이었다. 그곳에서 2년 반 근무한 신참인 그는 '대리 2년차 경력을 인정해주겠다'는 타 증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직장을 옮겨 채권 영업 업무를 맡았다. 늦게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동안 힘겨웠던 시간들의 보상을 한꺼번에 다 받았던 것 같았다"고 말하는 조한홍 회장.
그때부터 승승장구하여 미래에셋증권 사장을 거쳐 미래에셋생명 사장을 역임했다. 기자가 "월급도 무진장 많았겠다"고 묻자 조 회장은 "그때만 해도 인센티브 시스템이 없어 조금 생색만 내주는 정도였다"고 손을 저었다.
2017년 조한홍 회장은 정들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재경서산향우회 일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고향에 대한 애착을 고백하기도 했다.
"저희 형제들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까운 곳(서울)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뵈면 늘 고향을 먼저 떠올리곤 하지요. 고향 떠난 사람은 고향의 의미가 남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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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재경서산시향우회장 취임한 조한홍 전 사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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