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 창립총회 터. 서울 광화문광장 북쪽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리다.
김종성
독립협회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독립문ㆍ독립공원ㆍ독립관의 건립 등 창립사업에 주력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국민계몽ㆍ민력조성ㆍ민력단합을 통한 자주국권에 의한 근대적인 독립국가의 건설이었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사상, 자강개혁에 의한 문명국가를 세우고자하는 근대화운동의 추진에 목표를 두었다.
독립협회를 주도한 주요 회원들의 사상적 계보와 인적 계보를 보면 독립협회의 조직이 연합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두 개의 흐름은 ①서구시민사상을 도입하여 그 영향을 크게 받은 세력이고, ②다른 하나는 개신유학적 전통을 배경으로 동도서기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국내사상의 성장의 흐름이다.
이밖에 위정척사파와 동학과 기독교의 영향도 있으며, 인적 계보로 볼 때에는 신지식층 이외에 시민층ㆍ농민층ㆍ노동자층 및 해방된 천인층 등이 직접 대표위원으로 선출되어 주도회원이 되기도 하고, 이동휘 등 개화파무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도회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당시에 새로이 성장하고 있던 신지식층이며 박은식이 지적한 바와 같이 독립협회는 '유식한 신사의 조직'이었다. (주석 2)
독립협회는 한 때 회원수가 2,000명을 돌파하였으며 여러 지역에 지회를 설치할만틈 세력이 확대되었다. 주요 활동은 ①애국계몽운동 ②국권수호운동 ③국토수호운동 ④국가이권수호운동 ⑤인권신장운동 ⑥개화내각 수립운동 ⑦국민참정권운동 ⑧정치개혁운동 등을 꼽을 수 있다. 독립협회는 개화시기의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로서 민주공화주의사상을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독립협회가 창립되어 자주독립 정신이 강화되고 있을 때인 1897년 2월 20일 고종이 '아관파천'을 끝내고 환궁하여 같은 해 10월 12일 내각과 백성들의 상소에 따르는 형식으로 새로 지은 환구단에 나아가 이른바 '광무개혁'을 단행하였다.
고종은 조선이 청나라의 제후국과 같은 위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임을 내외에 선포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 청나라의 연호를 버리고 독자적으로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임금의 칭호도 황제로 격상하는 건원칭제의 칙령을 발표하였다.
광무개혁은 황제권과 자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그동안『독립신문』과 독립협회에서 줄기차게 주창해온 국가개혁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 채 자신의 통치권 강화에만 비중을 둠으로써 시대정신에 따르지 못한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주석
1> 신용하, 『독립협회연구』, 84쪽, 일조각, 1976.
2> 앞의 책, 104~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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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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