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글학회> 입구에 설치된 주시경 선생 흉상. 이곳부터 북쪽으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난 길이 '한글가온길'이다.
유영호
주시경은 국가적 위기를 맞아 국어국문 연구와 보급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좀 색다른 일을 하나 진행하였다.
1907년 11월 『안남 망국사(安南亡國史)』를 한글로 번역하여 서울의 박문서관에서 펴냈다. 중국 근대사상의 샛별로 불리는 량치차오(梁啓超)는 한말 한국사회 지식층의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개화ㆍ수구파를 막론하고 그의 저서 특히 『음빙실자유서(飮冰室自由書)』는 조선 지식인의 필독서처럼 인식되었다. 당시 안남(베트남의 한자식 국호)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참혹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주시경이 이 책을 번역하여 펴낸 것은 안남의 처지를 교훈삼아 조국의 독립을 지키려는 의도였다.
주시경이 『안남 망국사』를 번안하기 전 1906년 8월 28일부터 9월 5일까지 신채호가 『황성신문』의 논설란에 이를 소개한 바 있다. 우리 나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남처럼 식민지 국가로 전락할 것이니 안남을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한 번은 중국의 큰 문호인 양계초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광문회'를 방문한 일이 있어서 선생은 그와 사귀어 접촉하게 되었다. 이때에 선생은 그에게서 『안남 망국사(安南亡國史)』 한 책을 얻어 보고 우리 나라가 일본에 지배되어 감이 안남과 비슷함을 알고 신문이나 강연만으로 사대사상의 수구파나 친일파를 배격함에 만족하지 못하여 이를 순 한글로 번역하여 박문서관 주인 노익형 씨로 하여금 발간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 책을 사 읽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그러나 일반 민중은 비밀리에 돌리어 가면서 읽었다. (주석 4) 〈이 기록은 '광문회'가 설립된 시기가 1910년 인데, 연대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 ㅡ 저자〉
주시경이 번역한 『안남 망국사』는 통감부의 악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3쇄까지 찍어내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주석
4> 김윤경, 앞의 책,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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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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