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 동상 앞에서 옛 일을 떠올리는 박종대 선생박경리 선생 동상 앞에서 옛 일을 떠올리는 박종대 선생
유병천
- 삶의 균열이라 표현해주셨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될법한 이야기 같네요. 독일에 유학을 다녀 온 후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소개해줄 수 있나요?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독일 사회 시스템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한 사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2000년대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유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범인은 10여 세 여아를 유괴해 부모에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범인은 잡혔지만, 아이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경찰은 유괴범에게 아이가 있는 곳을 대라고 했지만 범인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고문을 하겠다고 위협했고, 결국 범인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아이는 벌써 숨진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온 국민이 분노했죠. 여기까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중요한 건 다음 상황 전개였습니다. 범인은 수감 중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경찰이 자신에게 고문하겠다고 협박한 것이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죠. 범인의 뻔뻔한 행태는 또 한 번 공분을 불러일으켰지만, 헌법재판소는 범인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가에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권력 기관이 개인을 협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당연히 법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게 독일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몹쓸 인간의 인권까지 지켜주는 사회라면 누구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사실 '국가 권력'은 어원을 더듬어 보면 '공공의 폭력'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믿기에 인신을 제약하는 폭력에 동의하는 것일 뿐입니다. 삼권분립이 나온 것도 그 폭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죠.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그 수준으로까지 나아간 독일 사회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유괴 사건은 이청준 선생의 <벌레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영화로 만든 <밀양>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영화에서 종교와 용서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벌과 인권 침해에 관한 판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이클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도 떠오릅니다. 많은 책을 번역하셨는데요. 번역한 책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책을 고르시겠습니까?
"음, 고민이 되는 질문인데요.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꼽고 싶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인데, 그림이 퍽 특이합니다. 팔레트를 든 화가를 비롯해 화방에 우연히 들른 공주 일행을 그린 작품인데, 정작 이 그림의 모델이 되는 국왕 부처는 지금 우리가 그림을 보는 위치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바뀌어 있는 것이죠. 이를테면 연극배우가 관객을, 소설 속 주인공이 독자를 바라보는 식입니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의 작가는 이 그림에서 사람이 아닌 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응석받이 공주의 애완견으로 보이는 개는 난쟁이 어릿광대가 등을 짓밟아도 묵묵히 참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개의 모습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개로 살기를 강요당한 바르톨로메라는 소년을 보았습니다.
바르톨로메는 혼자서 걷기조차 힘든 난쟁이 꼽추입니다. 중세의 가치관에 따르면 난쟁이나 불구는 하늘로부터 벌을 받은 불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죠.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던 바르톨로메는 우연히 길에서 공주의 눈에 띄어 공주의 노리개가 됩니다. 이제부터는 공주의 인간 개가 되어 개처럼 기고 짖어야 했죠. 이런 바르톨로메에게 유일한 벗과 희망이 되어 준 것은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화방과 그림이었습니다.
화가들은 바르톨로메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았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선입견도 없었고, 뒤집어쓴 개 가죽으로 바르톨로메를 평가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르톨로메에게 인간의 모습을 일깨워 준 것은 그림의 세계였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회화이기 때문이죠. 회화는 표면에 드러난 그대로를 재현하는 사진과는 달리 여러 색깔을 겹쳐 사물 속에 숨겨진 깊은 맛이 우러나오게 하는 예술입니다.
예를 들어 밤하늘을 그리더라도 검은색 하나만 칠하지 않고 흰색, 노란색, 파란색을 겹쳐서 칠할 수 있죠. 떠오르는 해에 대한 기대와 별빛, 달빛, 깊은 우주에 대한 경건함, 거기다 화가의 소망까지 시커먼 하늘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회화는 드러나지 않은 대상의 깊은 본질을 선과 색채로 포착해 내는 예술 장르입니다.
벨라스케스는 개의 그림 속에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과 영혼을 담은 한 소년의 모습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로부터 400여 년 뒤 이 책의 작가는 개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인간의 권리와 주어진 환경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이건 해석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역사라는 것이 해석의 산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행복한 오해'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겁니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행복한 오해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