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이희훈
3대 6이 8대 1로 바뀌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숨졌다.
23일 헌법재판소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농민 백남기씨에게 물대포를 일직선 형태로 살수(직사)한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2014년 김이수·이정미·서기석 재판관이 낸 소수의견이 마침내 다수의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당시 백씨는 물대포에 머리와 등, 가슴 윗부분을 맞고 쓰러졌다. 가족들은 경찰의 물대포 직사가 위헌이라며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백씨는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2016년 9월 25일 세상을 떴다.
헌법소원은 청구인의 기본권 침해를 회복하기 위한 제도다. 이 사건처럼 당사자가 사망한 뒤에 나오는 결론은 어느 쪽이든 효과가 없다. 이 때문에 보통 청구인이 사망하면 심판 자체가 중단된다.
헌재는 고민 끝에 "심판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직사살수행위는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며 헌재는 직사살수행위가 헌법에 합치하는지 여부에 대한 해명을 한 바 없다"는 이유였다. 다만 이종석 재판관은 가족이 먼저 헌법소원을 제기한 뒤 백씨를 청구인으로 추가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사건을 판단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반대했다.
사건 전반을 살펴본 재판관들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물대포 직사는 위헌'이라고 결론 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당시 경찰이 시위대 해산에 꼭 살수가 필요했는지, 특히 백씨가 시위대와 떨어져 홀로 경찰버스에 연결된 밧줄을 끌어당기는 상황에서 반드시 그에게 물대포를 쏴야 했는지, 살수요원들의 시야가 제대로 확보됐는지, 가슴 윗부분을 겨냥한 직사살수의 위험이 있는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백씨의 머리와 가슴 윗부분을 향해 약 13초 동안 직사했고, 그가 쓰러진 뒤에도 백씨와 그를 구조하던 시위대 등 5명을 향해 15초가량 추가 살수했다. 헌재는 이 일로 백남기씨가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 당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또 지연된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