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스튜디오 전경
국립민속박물관
- 그러면서 로컬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 건가.
"여러 가지로 열악하지만 그래도 자원과 환경을 잘 활용하면 좋은 점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재정자립도만 보면 공무원 월급 주기도 어려운 수준이라 중앙정부 보조 없이는 자생이 불가능하다. 이런 곳에서 과연 예술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았다.
시장보다는 공공 영역에서 일이 많이 생겼다. 특히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나서는 중앙과 도청, 군청을 오가면서 문화 관련 프로젝트에 전방위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국제행사가 아니더라도 지역이 살아남아야 하니까 힘내서 뭔가 자꾸 일을 만들어 보고 각종 지원사업도 활용하자는 마음이 생겼다. 지역의 공공사업은 하면 할수록 회의가 들기도 했는데 내부 현실을 알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지역 상황에 너그러워지는 면도 생겼다. 요즘은 덤덤해져서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니 형편대로 살자는, 거의 득도한 수준이다.
누가 로컬에 대해 희망적인 얘기만 늘어놓으면 왜 어려운지 반론을 펴고, 반대로 너무 절망적이라는 투로 말하면 성공 사례를 들면서 옹호를 한다. 그래서 로컬 관련 자문이나 교육을 하면 가장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공감해 주기도 한다."
- 로컬에 대한 특별한 환상도 없겠다.
"나에게 로컬은 현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근 로컬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로컬을 자신의 마케팅 도구로 쓰거나 슬로건화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용어를 영어로 바꾸면 약간의 감성적, 낭만적 요소가 생기지 않나. 뭔가 될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창업 측면에서 로컬은 정말 어렵다. 근사한 디자인과 톡톡 튀는 콘텐츠만 장착하면 금방 사람들이 몰려와서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자기도 유명해질 것 같지만 막연한 그림과 설계도만 가지고 덤비는 경우가 정말 많다. 막상 현실에서 부딪힐 숨은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다. 설사 그런 곳이 있다 해도 군계일학 모델이거나 일반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어렵게 만들어 놓아도 의외로 돈이 안 된다.
가령 관광 하나를 봐도 참신한 패키지를 만들면 보기에는 창의적이어서 경쟁력이 있을 것 같지만, 디테일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단가가 높아지고 대상은 좁아져서 남는 게 없다.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체험도 하며 주민과 관계를 맺는데 이런 게 다 비용과 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대중 관광은 획일적이고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구조화하고 싼 가격에 양적 마케팅 위주로 가니 지속되는 거다."
- 듣기에 따라서는 비관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로컬에 가망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냥 상황을 담백하고 냉철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생각해야 현실성이 높아진다. 이런 생각이 오히려 로컬 지향적이다. '로컬만이 답이다'도 아니지만 섣불리 '지방소멸'을 외칠 수도 없다. 나도 로컬에서 살고 있는데 이율배반적이지 않겠나.
또 대체로 로컬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로컬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이른바 언터처블한(건드릴 수 없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스펙이나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유명 대학 나오고, 해외 유학 갔다 오고, 전직 교수에 대기업 임원에 기자까지 다양하다. 전화 한 통 하면 옛 지인들이 달려와 열심히 홍보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지역의 보이지 않는 시기와 견제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의욕이 꺾이고 때로는 충돌과 민원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로컬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어 독립적인 성과를 이루거나, 아니면 아예 그 (로컬의) 역학 관계 안으로 편입돼서 현지화되거나 둘 중 하나다. 출발점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이 다르다 보니 본질적으로 편입되는 게 쉽진 않다."
- 막상 현실에선 어떻게 할지 막막할 것 같다.
"청년이든 중장년층이든 어떤 식으로든 적정 수준의 로컬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그래야 공동체의 일원으로 최소한의 소통과 교류를 하면서 살 수 있다. 너무 납작 엎드리면 동네 머슴 되기 딱 좋고, 왕년의 경력 내세워서 자존심만 부리면 외면당하기 쉽다. 그래서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꼭 필요한 게, 좀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지역 친화적 정무 감각'이다."
사기꾼 되지 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