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화해평화사역 성명서,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한인 청소년들
아시안화해평화사역 제공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지 2주가 흘렀다. 미국 각 도시에서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고, 플로이드의 이름을 외치는 함성과 분노는 식을 줄 모른다. 그동안 인종 갈등을 부추겼던 부조리한 공권력 행사와 구조적인 차별을 향한 변화의 열망이 급변점(Tipping Point)을 넘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과 사회 및 정치권은 이런 사태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많은 시민과 사회 인사가 연일 정의 회복과 변화를 외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일부 보수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합세해 시위대의 폭력성과 이념성을 핑계 삼으며 이들이 사회 안정을 위협한다고 비난한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이런 사태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반응을 내어놓고 있다. 한편으로는 같은 인종 차별의 그늘 아래 있는 소수 민족으로서 정의 회복과 변화를 바라고 있지만, 이런 목소리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992년 LA 인종 갈등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트라우마가 그대로 남아있어서다. 당시 흑백 갈등으로 빚어진 사태가 한인을 향한 분노로 옮았기 때문이다.
미주 한인 교계의 반응 또한 이런 한인의 열망과 우려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시대의 요구에 응답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그동안 소수 인종 간의 갈등 가운데 받았던 상처와 두려움을 직시하며 보듬고 있다. 미주 한인 교계의 주요 반응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한인 이민자, 그저 '선한 소수인종'으로 머물 수 없어"
와싱톤사귐의 교회 김영봉 목사는 교인에게 보내는 목회 서신을 통해 플로이드 사태를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더불어 한인 이민자가 이런 현실 앞에서 그저 순응하는 소수인종이 되지 말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평화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던 코로나19 감염증에 더해, 지난 며칠은 우리가 사는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폭력 사태로 인해 마음이 무겁습니다. 조지 프로이드의 목을 짓밟고 있는 경찰의 굳은 표정이 마음의 스크린에서 지워지지 않고, '제발,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라고 간청하는 조지 프로이드의 호소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그로 인해 미네소타와 디트로이트와 애틀란타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약탈 사태로 인해 마음이 착잡합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선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도 답답한 마음입니다.
우리 한인 이민자들 중에는 자신을 '반쯤 백인'으로 착각하고 사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선량한 소수인종'으로서 이런 문제에서 비켜 서 있으려는 유혹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평등한 대우는 수많은 흑인들이 희생한 대가로 얻은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우리는 결국 이 땅에서 소수 인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우리도 목소리를 합하고 힘을 더해야 합니다. 다만,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폭력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행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차별 의식을 걷어 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주일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비장합니다. 이번 주일은 성령 강림절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서 보듯,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세워 놓은 차별을 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화해와 평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갈등과 분열의 바이러스가 퍼져가고 있는 이 땅에 임하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인종 차별은 죄악... 정의는 감정 아닌 행동하는 것"
이민자 보호교회(이보교) 운동은 지난 6월 1일 "인종차별 철폐와 정의 실현을 위한 이보교 선언문"을 발표했다. 뉴욕과 시카고와 커네티컷 이보교가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다. 선언문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미국 사회 내에 오랫동안 지속돼온 '구조적인 인종 차별'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정의하고, 이는 '반사회적 불의이며, 복음의 가르침과 상반된 죄악'임을 주장했다.
또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라는 '성경의 요구'에 따라 '모든 인종차별에 저항하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 목소리를 높이'기를 촉구했다. 이를 위해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6가지 선언을 채택했다.
1. 인종차별에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임을 알고, 정의를 위해 소리를 높일 뿐만 아니라 행동에 나설 것을 다짐합니다.
2. 인종 간 갈등을 부추기거나 인종차별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을 거부하며, 반이민 행정명령 등 이민자와 소수 인종을 차별하는 정책도 반대합니다.
3. 그동안 억눌린 채 숨죽이며 살아왔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고 그들의 모습이 보일 수 있도록 연대할 것입니다.
4. 우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하며, 같은 소수 인종으로서 그들과 연대해,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에 저항해 함께 싸울 것입니다.
5. 모든 시위와 저항운동은 평화적, 비폭력적 방법으로 실행되어야 하며, 어떠한 종류의 폭력과 약탈도 거부합니다.
6. LA 폭동 시 많은 한인들과 소수 인종들이 폭력의 피해를 입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반인종차별 시위가 또 다른 약자들을 희생자로 만들지 않도록, 평화적인 저항운동이 되기를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