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생애사진 100선1984년 미국 '피플'지에 실린 김대중-이희호 부부 사진.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이 같은 정치적 변화의 중심에는 이 여사가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비하와 멸시의 관념으로부터 해방되고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여성을 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 때문이다. 아내 덕분에 나는 인류의 나머지 반쪽을 찾을 수 있었다." (이희호 평전 '고난의 길, 신념의 길' 中)
김 전 대통령은 1983년 미국 망명시절 한 강연회에서 이 같이 말하기도 했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내 아내 덕분이고, 나는 이희호의 남편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김대중의 부인 이희호가 아닌 이희호의 남편 김대중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스다이차오>는 "이희호 여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수호를 위한 노력을 평생 대통령과 함께 해온 만큼 노벨평화상의 절반은 부인의 몫이다"라고 적었다.
부부의 연을 약속할 당시 꿈꾼 '정치'를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함께 일궈냈다.
마지막까지 여성운동가였던, 그녀
"내 양심에 비추어 일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 길을 걸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2016년 11월 2일 한겨레 인터뷰)
그녀의 바람은 그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후에도 '여성의 인권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았다. 이 여사는 별세하기 1년 전인 2018년 3월, 당시 불불고 있던 '미투 운동'에 대해 지지의 뜻을 밝혔다.
"정말 놀랐어요. 가슴 아팠어요. 남성들은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해요. 어떻게 여성들을 그렇게 함부로 취급할 수 있는지 너무 화가 나요. (여성들이) 용기 있게 나서는 거 보면 좋아요. 우리 땐 생각도 못 했어요. 대견하고 고마워요. 더 단호하고 당당하게 나갔으면 좋겠어요." (2018년 3월 1일 경향신문 인터뷰)
그녀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여성운동가로 살았다.
이미 그가 떠난 후, 남은 언어들이 그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 "위대한 여성지도자"로 기억하고 있다.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민주진영 전체의 큰 어르신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하셨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배우자를 넘어 20세기 대한민국의 위대한 여성지도자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이 깊었던 것은 이 여사 역할 덕분이다. (고인은) 여성부 신설과 남녀차별금지법 제정 등 국민의정부 시절 여성정책에 크게 기여했다. 오늘도 동교동 자택에는 두 분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을 것입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19년 6월 11일)
"이희호 여사는 여성이 가진 포용의 미덕을 보여주셨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국난 극복과 정치 안정에 큰 힘이 됐다. 영부인을 넘은, 김 전 대통령의 든든한 정치 동반자로서의 삶은 여성과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남겨줬다. 먼저 서거하신 김 전 대통령 곁으로 가셔서 생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시길 바란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2019년 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