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에서 만나 인터뷰하고 있는 유의선.
문세경
"언니도 알다시피 나는 학생운동 출신이에요. 1996년도 연세대 사태에 결합했어요. 연세대 사태를 마무리하고 노동현장에 들어갔어요. 청계천에서 시다를 하다가 인천의 남동공단에 취업해서 일하고 있었어요. 연세대 사태에서 한총련 재정국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구속됐어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개월 살고 집행유예로 나왔어요.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민주노총에 있는 아는 분의 추천을 받아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의 서울센터 일을 했어요. 얼마 후 "실업자도 노동자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서울지역 '실업운동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실업문제를 다루면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을 제대로 만들어야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국민기초법 현실화, 최저생계비 현실화 싸움을 그때 시작했죠. 2001년에 명동성당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인 최옥란씨와 함께 농성 했어요. 수급을 받던 최옥란씨는 다음 해에 수급이 탈락할 상황에 놓이자 이를 비관해 자살했어요. 최옥란 열사의 죽음을 보고 빈곤문제를 풀기 위한 활동을 내가 평생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빈곤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실로 거창한 의제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웠다. 물론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에 빈곤사회연대의 소속단체인 전국노점상총연합(이하 전노련) 고양지부에서 한 분의 노점상이 돌아가셨다. 그때 지도부가 모두 수배를 받자 유의선은 상황실장을 맡았고, 장례를 치렀다. (관련 기사:
붕어빵 노점상은 왜 자살했을까 http://bit.ly/hFrq7)
잠시 쉬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09년 1월에 용산참사가 터진 것이다. 빈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추모제 사회를 봤는데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다행히 구속은 면했다. 그 이후로 활동을 제대로 못 하자 우울증이 생겼다. 그냥 있으면 우울증이 심해질 것 같아서 텐트와 코펠 하나를 챙겨서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녔다.
"온전히 놀아본 적이 별로 없어요. 수련회 등을 가도 맨날 회의하고 밤새워 술 먹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집에 왔어요. 아무 생각 없이 놀러 다니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우울증도 나아졌고. 여행 가기 전과 여행 갔다온 후가 너무 달라요. 나는 평생을 빈곤운동을 하면서 살겠다고 했지만, 그러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잠시 쉬었어요. 돌이켜보니 도망쳤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스스로가 용납이 안 됐어요."
몸이 안 좋아 쉬었을 뿐인데 도망쳤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괴감에 빠져 지냈다. 그러기를 두어 달,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고 다시 힘을 냈다. 진보신당 대외협력실장으로 일했다. 2011년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출마해 당선되었지만, 곧이어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졌다. 더는 정치 공간에 머무를 수 없었다.
노점에 녹즙 배달까지... 전노련으로 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