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을 찾아서' 포스터.
ⓒColumbia pictures
영화 <행복을 찾아서> 속 주인공 크리스의 독백이다. 당장 잠잘 곳도 없는 그는, 다섯 살 아들을 화장실 바닥에 잔뜩 휴지를 깔고 눕혀 재우며 밤새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흘린 눈물만큼 노력한다. 낮에는 세일즈를 하고 밤이면 노숙자 쉼터에서 아이를 재워놓고 달빛에 의지해 공부하며 행복을 찾고 또 찾는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그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주식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거다. 그 감동은 이 영화가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엔딩 크레딧으로 한층 더해진다.
처절하도록 가난했던 한 흑인의 성공스토리는 우리에게 말한다. 누구든 열심히 행복을 추구하면 행복에 닿을 수 있으니 힘을 내라고. 그 메시지는 영화 제목에도 담긴다. 포스터에 쓰인 영화 원제 'the pursuit of happiness'를 보면 'happi만 빨간 글씨로 강조돼 있다. 감독은 영화 속 크리스의 절규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벽에 자꾸만 'happyness'란 낙서가 있자 크리스는 지우고 지우며 소리친다. "y가 아니야!, i라고 i!" 영화는 말하는 거다. 왜(y:why) 행복하지 못한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고. 내(i)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거라고.
크리스는 해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만 보장된 정글 같은 현실 속에서, 세상을 향해 '왜'냐고 따져 묻지 않고 '나'의 힘으로 행복을 쟁취해냈다. 그런데 영화에 따르면 크리스는, 어려운 큐브를 단 몇 분 만에 맞춰 입사하고 싶은 회사 관리자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아이큐가 높다. 그래서 가능했다. '특별하기에' 그는 가난해도, 흑인이어도, 다른 많은 노숙자들과 달리 주식회사에 들어가 성공하고 그의 삶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뒤집어보면, 그가 평범한 흑인 노숙자였다면 노숙자쉼터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거란 얘기다.
크리스가 살았던 미국 사회가 과연 공정한 사회일까? 안정된 일자리, 좋은 일자리는 소수로 존재하고 우리에게는 그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기회만을 보장한다면, 특별히 머리가 좋아 수험능력이 뛰어나거나,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지만 능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된 이 등에게만 행복을 허락하는 실질적으로는 너무도 불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청년들이여,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를 위해 단결하라!
주지하듯 불안정하고 불편한 질 낮은 일자리들이 IMF시대 이후 무차별적으로 양산됐고 그 반대급부로 질좋은 일자리는 너무도 좁은문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그대도 나도 아닌 다른 이유로 아파해온' 을들의 싸움이 아니다. 현재의 불행을 한발씩 양보하고 타협해 해결하면서, 동시에 다시는 그 아픔이 없도록 어깨걸고 함께 싸워야 한다. 고시원에서의 수험생활이든 불안한 비정규노동자로서의 삶이든 모두가 엄한 '개고생'이다.
원하는 이들 모두가 '안정된 일자리를 추구할 권리'만이 아닌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또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다행히 이정미 전 의원은 본질을 짚어주었다. 기사의 제목이 비록 팩트왜곡에 초점을 맞추었을지언정 그는 20대 국회에서 자신의 법률개정안('상시지속업무나 위험안전업무에 대해선 더는 비정규직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은 꼭 필요한 곳으로만 제한돼야 한다'는 내용) 발의를 언급하며 근본적 답으로 '비정규직 사유 제한'을 말했다. (관련 기사 :
이정미입니다, 인천공항 논란을 '로또'로 호도 마십시오)
그와 같이 근본적 대안을 말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꼭 '사유 제한'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이 정규직 보다 높은 임금을 받도록 하는 대안이나,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되 일부는 정규직을 보장받는 임시근무자로 두는 북유럽의 퍼플잡도 생각해볼 수 있다. 파격적으로 아예 모든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하여 노동의 유연성을 최대로 하자, 그래야 모두가 경쟁해야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다소 무리는 있지만 실업자들을 사회안전망이 단단하게 안아주는 시스템이 전제된다면 검토 못할 바도 없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청년들끼리 피 터지게 의자놀이하지 말고 의자를 더 갖다 놓으라고, 즉 위와 같은 제도적 장치들을 고민하고 마련하라고 정치권을 향해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코로나보다 루저가 두려운 청년들이여 단결하고 행동하라."
"안정된 일자리를 추구할 권리'만이 아닌 '안정된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의 보장을 위해 혁명하라!"
<덧붙이는 글>
"우리나라 백수들은 참 착해요. 프랑스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때려 부수고 난리던데…. 니 탓이 아니야. 힘내 씨X."
2010년 개봉한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중 깡패 박중훈의 대사입니다. 청년 여러분께 비슷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탓이 아니에요. 기죽지 마세요. 여러분 탓이 아니에요. 어느 쪽도 비난하지 마세요. 싸울 대상이 누구인지,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청년 여러분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나가기를 바랍니다. 기성세대로서 감히 부탁드립니다.
('줄세우기 경쟁교육'에 상처받은 청소년들이여, '교육혁명'을 하라! http://omn.kr/1o4tn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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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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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에 상처받은 청년들이여, '일자리 혁명'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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