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방흥용씨의 부인이 1952년 면장으로부터 받았던 표창장.
표창장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공적을 세우고 전몰한 애국 열사의 유가족’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유성호
방 이병 사후 남은 가족들은 면사무소로부터 식량지원, 농사지원 등을 받을 수 있었다. 방씨도 학비를 면제받아 중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방씨는 어머니가 1952년 면장으로부터 받았던 표창장을 지금도 갖고 있다. 누렇게 변한 표창장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공적을 세우고 전몰한 애국 열사의 유가족"이란 문구가 담겨 있다.
하지만 방씨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갑자기 모든 지원이 끊겼다. 당시 군사원호법이 시행되면서 전사확인증 등 증빙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학업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방씨는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가장을 잃은 집안과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지원이 끊긴 이후에) 너무 힘들었죠. 농사 조금 지어서 먹고 살 수가 있나요. 빚이 늘어가니 그나마 있던 논도 팔게 되고... 고등학교에도 못 가고 말끝마다 '호로XX' 소리 들었던 삶이 평생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시대에 아버지 없이 사는 것의 어려움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릅니다."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을 지나 노년이 된 방씨는 2014년 다시 국방부의 문을 두드렸다. 단순히 지원과 관련된 문제가 아닌, 아버지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부의 답변은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병적자료에 '군번 2901886 방흥용'이 남아 있음에도 생년월일 및 주소가 기재돼 있지 않아 동일인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따.
"그땐 아주 실망했죠. 나라 지키다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행정을 엉터리로 하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게 원망스럽더라고요."
'군번 2901887 방흥용' 추적
그러던 중 방씨는 2018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아래 위원회)'의 존재를 알게 됐다. 신문을 보다 우연히 '군에서 사망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내용을 발견한 그는 곧장 진정서를 넣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8년 특별법 제정으로 만들어진 위원회는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그 관련자의 피해와 명예회복, 나아가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과 인권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약 1년 동안 조사를 진행한 위원회는 아버지 방 이병과 '군번 2901886 방흥용'이 동일인물임을 밝혀냈다. 위원회는 "사망 구분에 관한 사항을 전사자로 재심사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결정문을 국방부에 보냈고, 국방부는 지난 3월 방 이병을 전사자로 최종 인정했다.
위원회는 우선 병적자료에 남아 있는 '군번 2901886 방흥용'을 추적했다. 생년월일과 주소는 없었지만 학력은 '국민졸(현 초등학교 졸업)'로 기재돼 있었는데, 이는 실제 방 이병의 학력과 같았다. 또 군번 2901800~2901999의 200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모두 1949년 3월 5일 18연대에 입대한 이들이었고, 주소가 확인되는 138명 중 114명의 주소가 충남이었다. 18연대는 실제 황해도 옹진지구전투에 참여한 바 있으며, 방 이병 역시 충남 서산 출신이었다.
위원회는 1921~1932년생(당시 입대 가능 연령) 중 '방흥용'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 역시 전수조사했다. 4명의 방흥용 중 1명만 '하사'로 군복무한 사실이 조회됐고, 나머지 3명 중 2명은 실제로 군복무 사실이 없는 이들(생존해 있는 자녀와 직접 통화)이었다. 즉 나머지 1명인 실제 방 이병이 군번 2901886의 주인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아들 방씨가 기억하고 있는 '해골 마크' 또한 중요한 단서로 작용했다. 위원회는 18연대 창설요원이었던 이들과 2000년 제18보병연대가 발간한 <진백골전사>를 통해 '1948년 11월 20일 18연대 창설 1기생인 백복환 상사가 부대명을 건의했고 이후 부대 간부들이 회의를 개최해 백골 부대와 백골 마크를 부대 상징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창설요원들은 "18연대 부대원들의 군번 앞 세 자리가 '290'이었는데, 이것이 '2×9=18'에 따라 18연대에 부여된 군번"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방씨가 지금껏 보관하고 있던 면장 표창장(1952년) 역시 아버지의 전사 여부를 밝혀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위원회는 표창장 명의자의 이름과 서산군 사령등사부에 기재된 당시 면장의 이름이 일치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표창장의 서체 및 직인과 당시 면장이 작성한 다른 문서(농지개혁 관계 통계 조회의 건)의 서체 및 직인을 비교해 표창장을 진본으로 판단했다.
묘 앞에 무릎 꿇은 77세 아들
▲ 71년만에 전몰용사 인정 받은 고 방흥용 이병 유가족 ⓒ 유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