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채원(29), 김찬우(26), 최유경(26) 씨
황경민
통일 한국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던 짐 로저스가 한국 청년들의 공무원 열풍을 보고 "대단히 충격적인 현상이며 활력을 잃고 몰락하는 사회의 전형"이라고 탄식한 것은 그냥 흘려듣기엔 뼈아픈 지적이다.
당장의 취업 환경을 보고 있기는 하나, 궁극적으로는 젊은이들이 모여 무엇을 하든지 생업이 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은 개척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대해서 그것이 정녕 옳은지 근본부터 되물어볼 차례다.
6년간 대형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관둔 29세 이채원(가명)씨는 일하느라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고 배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수술실 특수 파트를 전담하던 그녀는 비록 수입은 간호사로 근무하던 예전만 못하지만 새로 시작한 플로리스트 일에 만족하고 있으며, 자신이 새로 개척한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저는 6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더 이상 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사람들한테 인정도 받고 했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돌아보다 보니 번아웃이 왔어요. 나중에 남편의 격려를 받아 일을 관두고 새로운 걸 배웠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내가 왜 계속 병원 일에 얽매여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결국 내가 쓰는 비용은 정해져 있고,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기왕이면 제가 좋아하는 일로 해보고 싶은 거죠. (수입이 없더라도 계속할 생각인지?) 저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삶에 만족하고 있고 적어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것 같진 않아요."
안정적인 직장과 분명한 사회적 위치를 가졌지만 관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씨 같은 사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취업과 생계유지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이 언급되는 사회 속에서 이런 청년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직업을 구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돈과 안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건이 불확실한데도 이럴진대, 뒷받침이 충분하다면 청년들은 굳이 어려운 채용 시장을 두드리지 않아도 자신만의 길을 갈고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모험을 하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그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 세 가지가 다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과 기업들은 모험을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역동성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 공동체가 계급사회 같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중이다." (장강명, <합격, 당선, 계급> 중에서)
사실 청년들이 무작정 높은 연봉 혹은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 게 아니다. 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시작하더라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단 잘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고 대답했던 취업준비생 최씨와 김씨 역시 생활의 안정이 해결될 수 있다면 자신만의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평소 의학에 관심이 많다던 김씨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의학 지식으로 타인을 구조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는 최씨는 생물 전문 다큐멘터리 PD가 되어보고 싶다고도 한다. 줄곧 어두운 안색으로 취업 이야기를 하던 그들의 눈도 꿈 이야기에서는 번뜩였다. 다만 그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두려움, 실패해 생활의 안정을 잃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마 내딛지 못하겠다고 끝내 말을 흐렸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직업상담사 차원을 넘어 보다 넓은 의미로 꿈을 현실로 이루는 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청년 코치'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청년들이 이미 원하듯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선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을 동원해야 하는지 알려줄 상시적인 창구다.
좋은 이야기로 점철된 강연 같은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식당일을 배우려는 이에게 설거지하는 법부터 가르치는 것과도 같다. 이는 청년들의 재능을 발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과 잘 맞지 않는 꿈을 꾸는 청년들에겐 현실을 지각시키고 새로운 재능을 발굴케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고 나서 이제 청년들이 자신의 도전에 의문을 품지 않도록 그들이 기회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연구성과나 활동업적에 따라 안정적인 소득이 발생하기 전까지 국가가 최소한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준채용' 방식의 청년 지원책은 무리하게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같은 소요 재원으로 더 많은 혜택을 나누면서 장기적으로는 국가에 역동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며,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나은 해답이 있을 수 있기에 이 역시도 활발한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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