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하고 친절한 오름에 올라 가 봤어요?

마을사람들의 정성과 애정이 느껴지는 자배봉

등록 2020.08.13 10:38수정 2020.08.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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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금요일에 오름 올라가는 금오름나그네가 제주 서귀포 남원에 있는 자배봉에 올라갔다. 8명 모두가 오후 3시 세화리에서 만났다. 자배봉은 몇 번 지나쳤기 때문에 위치와 입구를 잘 알고 있고 있었다.


표선에서 멀지도 않다. 언제든 쉽게 갈 수 있어서 아껴 두었던 거다. 일기가 하 수상하여 이번에 서귀포 돈내코 부근의 영천악과 함께 가기로 하였다. 오후 3시 20분경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조그만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안내판 글에 자배봉 유래가 여러 개 있다. 한자로도 여러 이름이 있는데, 모두 '자배'의 음차인 듯하다. 그 중에서, 이 오름의 남서면에 '안부리'라는 곳에 조배낭(구실잣밤나무)이 많은데, 그래서 조배가 자배가 되어 자배봉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았다.
 
자배봉 올라가는 길 포장도로 바로 옆인데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자배봉 올라가는 길포장도로 바로 옆인데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신병철

단단히 준비를 하고 출발한다. 준비라는 게, 마실 물과 스틱이다. 70대 나그네는 스틱이 필수란다. 그것도 2개. 스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란다. 큼직한 나무가 길 옆에 도열하고 있다. 그런데 보통나무가 아니다. 밤나무와 참나무 상수리나무들이다. 다른 오름에서는 보기 어려운 나무들이다.

또 올라간다. 비고가 111m이니 제법 힘이 든다. 그래도 오름이라 육지의 등산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힘이 들어 좀 쉬어 볼까 할 때 쯤 분화구 능선에 도달했다. 이정표가 좌우로 나 있다. 오름 순환로로 분화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다니기 여간 편안한 게 아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돈다. 희미한 안내판이 나타난다. 마을 시제인 포제에 대한 글이다. 위미리 포제가 1, 2리로 나뉘어 지내다가 위리 2리는 1973년에 마을회의에서 폐지하기로 결정하였고, 그래서 지금은 위미 1리에서만 지내고 있단다.

안내판 글에 '과학적인 사고와 산업의 발달로 인한 천신 의식의 부재와 부락공동체 의식의 소멸로' 폐지했다는 표현이 안타깝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포제에 대하여 안내하고 있는 오름은 처음이었다.
 
자배봉 봉수 조선시대 군사적 통신 수단이었다.
자배봉 봉수조선시대 군사적 통신 수단이었다. 신병철
 
계속해서 우리는 오르락 내리락 하며 돈다. 길 옆에 데크가 깔려 있다. 안내판에서 봉수대라 알려준다. 안내판이 세운 지 오래 됐나 보다. 글이 낡아 잘 보이지 않는다. 봉수의 흔적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높은 데가 봉수였나 보다 하고 짐작한다. 관심 많은 나그네들이 요리조리 뜯어 보고 있다.


자배봉수는 동쪽으로는 토산봉 봉수와, 서쪽으로는 예촌망으로 연결되고, 그래서 연결되는 봉수가 제주 전역에 모두 63개 정도가 있단다. 해안에 있는 것은 연대라고 부른다. 1895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자배봉 분화구 분화구 안은 잘 보이지 않고, 저 건너 맞은편 능선이 보인다.
자배봉 분화구분화구 안은 잘 보이지 않고, 저 건너 맞은편 능선이 보인다. 신병철
 
능선길이 제법 길다. 분화구 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무성하기 때문이다. 저 멀리 능선이 보인다. 까마득하다. 우리가 돌아서 가야 할 능선이다. 분화구 안이 보이면 광경이 대단할 것 같다. 길 옆에 있어 작은 오름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규모가 대단하다. 둘레가 2,829m이고 저경이 816m나 된다.
 
자배봉 고인돌 자배봉 분화구 능선길 옆에 2기가 서 있다.
자배봉 고인돌자배봉 분화구 능선길 옆에 2기가 서 있다. 신병철
 
또 한참을 돌았다. 큰 돌 2개가 길 옆에 누워 있다. 고인돌이다. 정확한 표현은 한자말이긴 하지만 지석묘다. 고인돌은 모양만 나타내고 있는 반면, 지석묘(支石墓 : 서 있는 돌 무덤)는 모양과 내용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석묘의 받침이 뚜렷하지 않아 얼른 보아 그것인 줄 알기 어려울 것 같다. 고인돌이라면 우리나라 청동기 시기 족장의 무덤이다. 제주의 고인돌은 한반도 보다 200~300년 정도 시기가 뒤떨어진다. 그렇다면 BC 3세기~AD1세기 시기 이 곳 족장의 무덤인 셈이다.


이 정도의 큰 돌을 옮기려면 장정 50명 정도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러면 한 세대당 식구가 5명이라 하고, 그 사회는 인구 250명 정도의 부족이 된다. 부족의 크기가 만만치 않다. 정말 그랬을까?

그런데, 안내판 글이 좀 이상하다. '...고인돌은 선돌과 더불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석문화의 산물이며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기석'은 '거석'의 오류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 선돌은 별로 없다. 반면 전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기 족장의 무덤으로 돌칼같은 부장품이 나와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는 아니다.

또 좀 더 돌았다. 삼각점이 나왔다. 여기에도 안내문을 설치해 놓았다. 삼각점은 측량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점이 되므로 함부로 훼손하지 말라는 안내문이었다. 자배봉은 상당히 섬세하다.
 
자배봉 돌탑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려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
자배봉 돌탑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려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 신병철
 
능선길은 편안하다. 길옆에 굵은 나무들이 도열해 반가워한다. 쉴만한 곳에는 벤치가 있고, 돌탑도 즐비하다. 돌탑이 예사롭지 않다. 아슬아슬하게 쌓았다. 신기하게 쌓은 돌탑 구경도 재미있다.

드디어 한바퀴 돌았다. 올라왔던 삼거리가 나왔다. 내려가는 길도 편안했다. 다 내려오니 넓은 평상이 있었다. 오름 위에서 잊은 인증샷을 찍고 간식을 먹는다. 이어 두번째 대상 오름인 영천악으로 떠난다.

마을 사람들이 정성으로 가꿔 아기자기하고 친절한 자배봉을 올라 흐뭇해졌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마을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오름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에 이런 오름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이 샘솟아 올랐다.
#자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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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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