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세요?" 도서관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다. 아쉽게도 서울시 구립도서관 직원 대부분은 공무원이 아니다. 구청에서 위탁받은 기관 소속 직원이며, 직급이나 고용체계, 임금이나 처우는 구청과 위탁기관에 따라 다르다.
1999년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생긴 구립도서관인 금천구립도서관을 2004년 금천문화원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기 시작한 이후, 서울시 구립도서관들은 하나둘 위탁 과정을 밟아 나갔다. 초기에는 시설관리공단 위탁이 대세였으나, 지금은 문화재단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제3의 기관인 종교·학교법인이나 민간단체들도 상당수 도서관을 위탁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서울시 교육청 도서관은 22개, 지자체 소속 도서관은 153개이다. 이중 지자체 소속 도서관 152개가 위탁 운영 중이다. 그럼 다른 시·도는 어떨까? 대구시에 유독 위탁 운영되는 도서관이 많으며, 나머지 시·도는 대부분 지자체가 직접 운영한다.
위탁기관에 따라 도서관 운영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시설관리공단은 주차장이나 문화센터, 수영장 등 시설 관리가 주 업무인 기관이다 보니, 도서관 역시 여러 시설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정보기관으로서 갖는 도서관의 고유한 사명과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운영의 효율성과 수익 창출을 더 중요하게 본다.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들이 백화점 문화센터처럼 유료강좌들을 다수 운영하고, 심지어 일부 구의 경우 구립도서관 열람실을 독서실처럼 유료로 운영하는 이유이다. 시설관리공단은 단체장 같은 인사들이 이사장 등 임원급에 임용되는 경우가 있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독자성과 전문성을 갖고 도서관을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서울시 여러 구에서 새롭게 도서관 위탁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문화재단은 어떨까? 구 산하 문화재단은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만, 구 단위 문화정책을 세우고 축제를 주관하며, 구립 문화회관이나 아트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기본업무이다.
거기에 도서관을 위탁 운영하는 구가 있고, 하지 않는 구가 있다. 문화재단 대표로 부임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기업체와 문화계 출신 인사부터 현장에서 직접 뛰어온 문화운동가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대체로 임기제로 부임하여 2~3년 대표로 재직하며, 문화재단의 업무를 총괄한다.
문화재단 조직체계는 대개 문화정책팀, 문화회관 운영팀, 도서관 팀 정도로 되어 있다.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전문성을 갖고 소신껏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지지하는 분위기라면 문제가 없는 체계라고 볼 수도 있다.
도서관 주무부서가 교육부에서 문화부로 옮겨온 것에서도 드러나듯, 도서관이 갖고 있는 교육과 문화기능 중 어느 쪽을 비중있게 볼 것인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시민교육과 평생학습 시대의 가장 중요한 근거지가 될 수 있는 도서관을 지금처럼 문화부 소속으로 두는 것이 온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도서관을 교육기관과 문화기관 어느 쪽으로 볼 것인지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 대표이사로 부임하는 인사들의 문화경영에 대한 전문성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도서관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에 따라 도서관 운영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인들 역시 임기제이고, 성과를 올려 단체장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조직이 비교적 크고 직원 수도 많은 도서관에 대해 인원 감축과 문화재단 행사 동원, 성과수행에 대한 압박을 가하게 된다. 그 결과 문화재단으로 옮긴 이후 깊은 속앓이를 하는 도서관들이 꽤 있다.
시설관리공단이나 문화재단 같은 공공위탁이 아닌 민간법인이나 단체가 도서관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경우는 더 심각하다. 종교재단의 경우 도서관 직원들이 종교행사에 동원되거나, 암암리에 기부금 요구를 받기도 한다.
법인 이사장이 도서관 직원들을 모아놓고 성과를 올리라고 압박을 가하거나, 주일에 법인 이사장의 종교시설에서 관장들이 봉사하는 도서관도 있다. 법인 이사장이 운영하는 농장에 수확을 도우러 가거나, 생일잔치를 열어주는 것이 관례화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내가 근무한 구산동도서관마을의 경우 주민들이 만든 협동조합이 도서관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도서관 직원이 다수이고, 지역에서 생활협동조합을 비롯한 주민활동에 열성인 이들이 이사로 참가하고 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여 생활 SOC의 모범사례로 꼽은 이후, 정부기관과 전국 지자체에서 방문하여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되었다. 우리 도서관을 방문한 정부기관에서는 '전국에 세워질 생활 SOC시설들을 협동조합이 운영하면 어떨까' 라며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도서관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협동조합은 수익을 거두어야 하는데 도서관이 어떻게 수익을 거둔단 말인가? 위탁수수료도 없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십시일반 조합비로 근근이 운영되는 것이 협동조합의 실상이다.
우리 동네에 좋은 도서관을 만들었고, 위탁운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과 선의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공공기관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속에서 협동조합이 도서관에 대한 사명감만으로 아무 대가없이 무한정 순수하게 봉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공공성 확보를 위한 최선의 운영방식을 고민할 때
많은 예산을 들여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불필요한 갈등과 비민주적인 조직운영에 따른 낭비를 감수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서울시 도서관 직원 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하여 1706명. 이 정도 인원이라면 별도의 도서관재단이나 도서관사업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2009년 서울시에서 서울도서관 개관을 준비하며 도서관재단을 추진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 산하 시립도서관 사서들을 중심으로 도서관계의 반대가 심했다. 그들은 재단이 만들어지면, 서울시 도서관을 모두 위탁할 것이고, 직원들의 신분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물론, 도서관의 공공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했다. 결국 도서관재단 시도는 불발로 끝났고, 서울시가 직접 서울대표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서울도서관 외에 당시 65개관이었던 구립도서관은 현재 2배 이상 크게 늘었지만, 대부분이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탁기관도 제각각이고, 직원들의 처우나 도서관 운영방식도 저마다 다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서울도서관재단 같은 단일한 기관이 도서관들을 일괄 운영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당시 서울도서관재단을 앞장서서 반대했던 전국의 도서관학과 교수들은 위탁운영에 대해 원론적인 반대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이제 좀 더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지자체 소속 도서관 운영의 어려움이나, 직원들의 처우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채로 도서관은 계속 건립되고 있고, 지어진 도서관은 어디엔가 운영이 맡겨진다.
사서들은 전문직이라기보다는 단순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로 여겨지고 있고, 이런 인식은 사서들 스스로의 치열한 노력과 운동이 없다면 개선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위탁도서관 직원들은 단순직급 체계로 오랫동안 일해도 승진이 어렵고, 장기근무에 따른 보상이 약해 직업을 계속 유지하려는 동기와 자부심이 떨어진다.
위탁도서관 직원 1/3이 비정규직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잦은 이직을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조직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다행히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공공도서관 운영 및 고용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조례제정, 사서 고용과 운영 개선안이 포함된 공공도서관 운영 가이드라인 개발 등 다양한 제도개선 방안 마련에 나선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공공·민간기관을 통한 위탁이 지자체 설립 공공도서관 운영의 유일한 대안인지, 취약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다. 공공도서관은 모두 정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도서관 선진국들을 참고하여, 한 나라의 지식문화를 수호하기 위한 서울시의 비상한 각오와 결단을 기대해본다.
더불어 기존의 직영도서관이 위탁도서관에 비해 활기가 덜하고 정체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순환보직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행정직 관장이 아닌 전문직 관장을 임용하고, 법에 정해진 수만큼 사서들을 임용한다면 직영도서관 역시 활기있는 도서관으로 거듭날 것이다.
하승수는 공공성은 어떤 사람이나 조직이 전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지속적인 논의과정에서 확보되어야 한다고 했다. 서구사회에서 공공성에 대한 비판은 공공성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라고도 했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눈에 보이는 상품을 만들어 내지 않지만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 즉 교육과 서비스 등의 정보를 다루는 비물질노동이 공론장을 출현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도서관이 시민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공공장소로, 시대의 주요 담론들을 논의하고 소통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관이자 공론장이 되도록 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관심과 노력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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