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오름 안내도간단한 안내글과 길이 잘 표시되어 있다.
신병철
예상이 맞았다. 올라가는 길이 금방 나타났다. 입구에 안내판이 서 있다. 최근에 만든 것인지 잘 만들었다. 안내판 글이 다른 오름 안내글과는 달리 어법도 잘 맞고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문장이다. 단지, 오라리 방화사건의 핵심은 짚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는 안내판 아래에 있는 안내글 내용이다.
"민오름은 연미마을과 정실마을 사이에 위치한 표고 251m인 말발굽형 화구를 품은 오름이다. 지금은 숲이 울창하지만 4.3당시에는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오름이었다. 민오름은 제주 4.3사건 당시 유일한 동영상인 '제주도 메이데이'에 선명하게 등장한다. 1948년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대청단원의 부인 2명이 납치당하여 끌려온 곳이 바로 이 민오름이다. 두 여인 중 한 명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부지했지만 나머지 한 여인은 끝내 희생을 당했다. 또한 민오름 중턱에는 4.3당시 마을주민들이 피신생활을 하다가 희생된 동굴터가 있다."
안내글을 보곤 제주4.3사건 당시의 오라리 방화사건이 떠 올랐다. 일행에게 안내글이 전하지 못하는 사건을 설명해 본다.
"1948년 제주4.3사건이 4월 28일 토벌대 대장과 무장대 사이에 협상이 맺어져 더 이상 확대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5월1일에 오라리가 방화로 불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무장대 소행으로 몰아갔으나, 명백한 우익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특이한 것은 미군이 헬기를 타고 영화로 찍어 홍보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협상은 무효화되었습니다. 협상을 추진했던 연대장은 교체되었고, 이후 소수의 무장대를 토벌한다면서 제주도민에 대한 잔학하고 광범한 학살이 진행되었습니다. 최소한 3만명이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이 4.3사건을 알지 못하고 현재의 제주도와 제주도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걸을 길을 정한다. 가능하면 오름을 내려가지 않은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이 걸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