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 일본 동경을 비롯한 관동지방에 메그니튜트 7.9의 강진이 일어나 혼란한 틈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도둑질을 한다, 부녀자를 강간한다 등의 유언비어로 인해 군대와 경찰, 민중이 조선인 6천여 명을 학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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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일본 동경을 중심으로 관동지역의 강도 7.9의 강진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지고 혼란한 틈에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확산되자 군대와 경찰, 민중이 6천 여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 행사는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일본의 조선통치 방식의 전환과 일본 내에서의 조선인에 대한 시각의 변화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대한 학살로 나타나게 되었음을 영화상영과 문화공연을 통해 재현한다. 미래의 올바른 한일관계 및 동아시아의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1923년 9월 1일, 역사상 최대의 지진 피해를 남긴 강도 7.9의 강진이 일어나자 흉흉해진 민심을 잠재우려고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부녀자를 강간했다, 도둑질을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정부와 군대와 경찰과 소방관, 그리고 일반인들까지도 조직적인 조선인학살을 저지른다.
국내 최초 오충공 감독 작품 전편 연속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