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아이와 여행 중 겪은 돌발상황 중의 백미는 외국인들로 꽉 찬 미국 관광지의 어느 식당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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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와 여행 중 겪은 돌발상황 중의 백미는 외국인들로 꽉 찬 미국 관광지 어느 식당에서 아이의 토사물을 양손으로 받아낸 일이다. 아이는 배가 많이 고팠던지 느끼한 클램차우더 수프가 나오자마자 맛있다며 허겁지겁 먹어 치웠는데, 그러고 얼마 안 돼 갑자기 배가 아프고 토할 것 같다고 했다.
부리나케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늦었다. 이미 아이는 방금 전 먹은 것들을 식탁 위와 바닥에 바로 뿜어대기 시작했고 나의 반사신경은 그저 양손으로 그것들의 일부만을 받아냈을 뿐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그저 참담하고 막막했다. 아이는 젖은 채 어쩔 줄 모르고 서 있고, 주변 테이블 손님들의 미간 찌푸린 표정과 언짢아하는 대화들이 귀에 들어왔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 싶었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고, 나 몰라라 내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했다. 나는 유일하게 그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아이의 "엄마"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주변 테이블에 일단 너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는데 옆 테이블의 애기 엄마가 괜찮다고 자기도 늘 겪는 일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진심으로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아이 엄마가 아이 엄마 사정을 알아주는 것은 역시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인류 공통의 공감대였다.
덕분에 힘을 내, 바닥 치우기에 난색을 표하는 종업원에게도 거듭 사과를 한 뒤, 아이를 씻기러 화장실에 데려갔다. 아이 몸 상태를 살피고, 아이가 더 위축되지 않도록 짐짓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며 아이를 다독였다. 속으로는 여전히 심장이 벌렁벌렁 두방망이질 쳐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식으로 십몇 년을 온 힘을 다해 키웠는데, 요즘 나들이 가자는 나의 제안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무게감이 없다. 이제는 컸다고 각자의 취향과 식성의 호, 불호를 따져가며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데 대응하기가 점점 버거워질 뿐이다.
혹여 오랜 설득 끝에 가까스로 동행해봤자 출발 때는 물론 나들이 내내 우거지상이고, 빨리 집에 가자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러니 내가 알아서 아이들에게 어디를 가자고 제안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무척이나 반가웠던, 반나절만의 짧은 나들이
이번에 핑크뮬리도 당연히 남편하고나 시간을 맞춰보려고 거실에서 이야기 중이었는데, 시험기간이던 작은 아이가 어쩐 일로 자기도 가고 싶으니 시험이 끝나는 다음 주말까지 기다려 달란다. 놀란 마음으로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가자고 정하려는데, 불현듯 큰 아이마저 방에서 나오며 다음 주 토요일은 자기가 학원을 가야 하니 안되고, 일요일에 가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쩐 일로 두 녀석이 다 함께 가겠다고 나서는지 너무 반가워서 2주나 미뤄지게 되었어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 동기가 시험 공부와 고3 수험생이라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비롯되었든, 나처럼 코로나 집콕에 지친 마음에서 비롯되었든 아무래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