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
롤러코스터
그래픽노블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를 읽고 가슴이 먹먹했다. '낙태죄는 여성의 신체를 국가가 관리하며 여성을 재생산 도구로만 한정하는 가부장이데올로기...' 이런 말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임신중지는 당사자가 원해서 하더라도 힘들고 아픈 일이라는 게 느껴졌다.
친구 B는 임신중지를 했다. 친구는 자신에게 온 생명을 키울 수 없었다. 당시에는 친구에게 그 마음을 묻지 못 했다. 우리 사이에 금지된 이야기였다.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를 읽고 친구가 어떠했을지, 그때 이야기를 물어보고 들어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걸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힘들었지. 지금도 살면서 힘든 순간이 오면 불쑥불쑥 튀어나와. 죄책감이 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힘들다는 친구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임신중지가 불법이든 합법이든 그 과정은 평생을 거쳐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에 있어 최고로 고심하고 선택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는 결국 당사자다. 이것은 임신중지가 합법이든 불법이든 변하지 않는다. 임신중지를 기꺼이, 즐겁게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임신유지와 중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일은 짜장면과 짬뽕을 선택하는 일과 다르다. 임신은 여성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남성의 책임은 배제한 채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건 여성의 신체를 우리 사회 인적 자원 재생산의 도구로 보는 것이다. 이 일에 남성이 자유롭다면 여성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 자유로운 선택에 여성의 신체가 건강할 수 있도록 의료적 혜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불법시술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은 낙태죄가 만든 희생자들이다.
만약, 내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낙태를 하려 한다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어디서 정보를 얻어 어느 병원에서 시술을 받아야할지,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아는 게 없다. 성교육을 받을 때 월경 주기와 임신, 피임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 했다. 임신중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 자체가 임신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그러나 2020년 10월 보건복지부는 형법상 낙태죄를 존치하되 '모자보건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특정 사유에 해당하는 여성에게 낙태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헌법에 합치되지 않으면 폐지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존치하고 예외 규정을 두는 것부터 논리에 맞지 않다.
낙태에 반대하는 근거로 생명이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만 소중하고 우리 앞에 존재하는 한 생명의 인권은 소중하지 않은가?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여성 누구도 가볍고 즐겁게 낙태를 선택하지 않는다. 생명을 경시해서 그런 선택을 하는 여성은 없다. 임신중지 이후에도 존엄한 인격을 가진 한 생명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낙태죄는 전면 폐지돼야 한다.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
오드 메르미오 (지은이), 이민경 (옮긴이),
롤러코스터, 2020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사실상 낙태죄 존치... 항의 표시로 이 책을 샀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