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30일 앞둔 3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2020.11.3
연합뉴스
교사로서 교육 이야기를 연재하는 목적 중 하나는 색다른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볼 기회를 독자에게 제공하고자 함이다. 인간이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져가면서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꼬리와 다리를 만질 때 가지는 느낌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리도 만지고, 코도 만져보고, 꼬리도 만져야 코끼리 전체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지금 연재는 대한민국 교육이란 코끼리처럼 큰 분야를 바라볼 때, 다른 시선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거치고 수요자 중심 교육론이 대세가 되면서 한국 교육은 꾸준히 그쪽으로 변화를 거쳐 왔다. 학생의 관점이라고 하면 그래도 뭔가 한국 교육의 민주화에 도움을 많이 주었을 터인데, 묘하게 시선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학생이 아닌 학부모 중심론이 많아졌다. 이게 학교 교육의 파편화를 가져오고 제도적 민주화의 완성에도 불구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이 해결되지 않은 기제로 작용한다. 교육의 공공성을 외면하면 수요자 중심은 자칫 좋은 대학 보내기로 교육의 목적을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자 중심론에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긴 했다. 일단 말죽거리 잔혹사로 대표되는 학교의 폭력성을 순화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교육 관료제의 병폐도 많이 완화시켰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들이 커지고, 운영위원회 등 학교 내 민주적 질서가 많이 들어온 것도 수요자 중심 교육론의 긍정적 영향 중 하나일 것이다.
수능 감독관
이번 글에서는 지난 번 수능 출제 시스템에 대한 검토에 이어서 관리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수험생 입장에서 보는 시선을 출제자의 입장으로 옮겨봤듯이, 이번에는 관리 감독자의 입장에서 수능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수능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일환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 세상의 어떤 의견도 단 한 톨의 진실 정도는 갖고 있는 법이라서 말이다.
수능 당일만 되면 사건과 사고가 없기를 모두가 바란다. 그러나 50만 수험생이 응시하는 전국 단위 시험에서 단 한 건의 문제도 없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물론 수험생 개인의 입장에서는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에 자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억울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점차로 그 정도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매년 수능 철이 다가오면 감독 교사 구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필자가 교직에 처음 입문했을 때만 해도 1년 동안 수고한 고3 담임은 수능 당일 감독 교사에서 제외해주는 문화가 있었다. 지금은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고3 담임도 감독관 업무에 차출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감독과 관련하여 온갖 민원 제기가 다량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교사 중에서 수능 감독에 숙련된 인력이 누구일까? 당연히 고3 담임들이다. 수능 감독의 최고의 에이스를 빼고 감독관을 모집하는 것이 교육 행정 관료들에게는 너무나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여러 업무 부담으로 기피하는 고3 담임 업무를 맡은 사람에게 그나마 주어졌던 특혜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작년에 교사들이 수능 감독을 기피하면서 하루 종일 서서 감독하는 게 힘들다고 하자, 포털 뉴스 댓글 창에는 그깟 시험 감독 대학원생들에게 알바 시키면 차고 넘친다는 댓글이 많았다.
대학원생 알바는 과연 가능한 일일까? 대우나 처우, 노동 강도의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도록 하고, 수능 감독 업무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먼저 짚어보자.
학교에서 정기고사 감독을 늘 하는 교사도 수능 시험장만 가면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깨알처럼 쓰인 감독관 행동 지침을 보면 바로 기가 질려버린다. 밑줄 그으며 공부하는 것에는 이골이 난 대한민국의 교사들도 밑줄 치고 형광펜 그어가며 공부하지만 당일 날 그 많은 지침을 기억하지 못한다.
시험지와 답안지 뭉치를 들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밑줄 긋고 형광펜 색칠한 책자를 들고 공부에 공부를 거듭한다. 만약 지침을 숙지하지 못하였을 경우에 돌아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경험이 없는 대학원생에게 이 일을 맡겼다간 곳곳에서 사달이 날 거란 걸, 그 누구보다 교육 관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학력자인 대학원생 알바가 불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