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림사의 가을

그림일기 회원들 가을나들이

등록 2020.11.07 17:12수정 2020.11.0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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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유월에 시작한 그림일기가 벌써 5개월째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써서 카톡 방에  올린다. 금요일에는 만나서 일기를 읽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도 떤다. 그림일기는 다른 모임과는 느끼는 마음의 거리가 다르다. 일상을 공유하고 삶의 내밀한 속마음을 꺼내여 보이고, 진솔한 마음을 나누게 되니 더 가까워지는 듯하다. 서로의 삶을 격려하며 응원군인 셈이다. 누구라도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노력을 한다.


가을이 오고 계절이 바뀌게 되니 단풍을 그리고 억새를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그린다. 우리는 가을을 느끼고 싶어 밖으로 나가자는 약속을 했다.  11월 2일 월요일, 어제까지만 하여도 약간의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몹시 불면서 회색빛 하늘은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내일 가게 될 소풍이 살짝 걱정이 되면서. 햇살이 없는 날 야외 나들이는 재미가 없는데... 하지만 약속은 했으니 가야 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밖의 날씨부터 살핀다. 아파트 베란다 창 너머로 앞 동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오~~ 잘된 일이다. 안개 낀 날은 십중 팔구는 날씨가 따뜻하고 해가 반짝 뜬다." 다행이다. 안심이 되었다. 참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소풍 가는 날 아이처럼 기쁘다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바빠진 마음에 부지런히 움직인다. 야외에 나가서 마실 찻자리 준비를 간단하게 하면서, 찻잔도 챙기고 넓은 다포와 차, 또 간단히 먹을 다과까지, 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즐긴다.

그 자리에 맞는 다포와 찻잔 소품들까지, 어쩌면 산다는 것은 자기의 삶을 날마다 스스로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어디를 가든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차를 챙기니 참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귀찮을 법도 한데 매번 차 마실 준비를 해야지 마음이 흡족하다. 오랜 날들 다도를 하면서 생겨난 습관들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안의 보물들을 함께 공유할 때 빛이 나지 않을까. 그냥 가지고 숨겨 놓아둔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숭림사 들어가는 길목 숭람사 들어가는 길
숭림사 들어가는 길목숭람사 들어가는 길이숙자

  
숭림사 가는 길목 나목들
                             
우리 그림일기를 지도하시는 김지연 작가님이 말하기를 우리를 군산의 칠 공주라 부른다. 나는 이 나이에 공주 소리를 다 듣고 살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 관계는 참으로 묘하다. 서로 작은 둥지들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삶의 기운을 서로 나누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이 취향이 맞는 사람끼리 나누는 삶의 일상은 더 즐겁고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이제는 필요 없는 곳에 낭비하는 시간을 피한다. 내 삶의 길이는 자꾸만 짧아지고 있다. 항상 깨어서 잘 살아야지 하면서 마음을 다 잡는다. 나는 어느 곳이든 내가 머무를 자리가 아니면 피하고 만다.  

우리는 일곱 명이 승용차 두 대로 나누어 타고 익산 웅포에 있는 숭림사를 향해서 달려갔다. 어제까지 흐렸던 날씨는 햇볕이 쨍쨍하고 청명한 가을 날씨가 기분까지 상쾌하다. 어제 날씨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회원들은 등에 배낭 하나씩을 메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학교 다닐 때 소풍 가는 여학생들처럼 들뜨고 설레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웅포 숭림사 가는 길은 금강을 옆에 보면서 드라이브 코스로 아주 운치가 있고 멋진 길이다. 길 건너 피어 있는 억새도 갈대도 가을의  풍경의 멋을 더해 준다. 마음이 한껏 들뜨고 기분이 좋다. 모두가 "와아~~ 예쁘다" 하면서 한 마디씩 감탄사를 연발하고. 계절을 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음도 행복의 척도와 가늠하는 즐거움이다.
 
그림일기 회원들 낙엽밟기
그림일기 회원들낙엽밟기이숙자

     
숭림사 보광전 뒤 굴뚝 굴뚝
숭림사 보광전 뒤 굴뚝굴뚝이숙자

                                                           
정헤원 툇마루 툇마루에 앉아 사색하기
정헤원 툇마루툇마루에 앉아 사색하기이숙자

우리의 목적지는 군산에서 멀지 않은 웅포의 숭림사라는 사찰이다. 봄에 오게 되면 벚꽃 터널이 장관이다. 오래전 가본 그 사찰은 시골 동네 속으로 들어가 나지막한 산을 뒤로하고 있는 조용하고 작은 사찰. 사찰 입구 벚나무는 벌써 낙엽이 다 지고 난 후 나목으로 우리를 반긴다. 나무는 자기 할 일을 다 해내고 나목으로 우뚝 말없이 의연하게 서 있다. 나는 낙엽이 진 나무를 바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나뭇잎은 스스로 자기 몫의 삶을 살아 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때가 되면 모두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도 똑같다. 내 몫의 삶이란 어느 만큼 살고 가는 걸까, 지는 낙엽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은행나무 노란 단풍이 아름다운 은행나무
은행나무노란 단풍이 아름다운 은행나무이숙자

숭림사는 군산에서 30분 정도면 도착을 하는 가까운 거리다. 숭림사 입구에서부터 가을의 쓸쓸한 느낌이 전해진다. 정말 사람의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길은 한적하다. 낙엽이 진 나목만이 말없이 서 있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단풍 진 나뭇잎 몇 잎만 남아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도 가을의 운치를 더해 준다. 절 마당 들어서기 전 담장 안으로 보이는 은행나무를 보고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한다. 노란 은행잎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은행나무는 말 그대로 환상이다. 노란 은행잎이 이처럼 아름답게 느낀 지 오래되었다. 신은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 색의 자연을 인간에게 선물해 주실까, 노란색이 이처럼 예쁘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말이 없어진다.


회원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모두 사진 동호회 사람들 같다. 곱게 물든 나뭇잎들을 보고 이리 행복하고 즐거워할까?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오늘은 나이와 관계없이 모두 소녀로 돌아갔다. 오늘의 예쁜 풍경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에 바쁘다. 

대웅전 부처님을 바라보고 합장을 하면서 소원도 빌어 보고 내려온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절마당은 가을의 청명한 햇살이 이불을 깔아 놓은 듯 햇살이 따스하고 포근해 보인다. 우리는 아래 칸 정혜원 툇마루에 않아 눈이 부신 은행나무 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찬란하게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을 모습을 상상해 본다.


모든 사물을 때가 되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

나무도 사람도 모두가 각자의 역할이 끝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치는 똑같다. 봄에 피어나는 새싹은 생명과 환희를 느끼지만 가을의 단풍으로 곱게 물든 나뭇잎의 아름다움도 멋지고 황홀하다. 사라지는 소멸이 아쉬워서 일까 봄에 피는 파란 나뭇잎은 사람들이 줍지 않지만 단풍 든 낙엽은 예뻐서 주어 책갈피로 끼어 넣는다. 지는 낙엽을 바라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앞으로 다가오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다.

절 마당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곳이 사람이 있는 곳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없고 조용하고 한적하여 가을을 사색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이제는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조용한 곳이 좋다.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있고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다.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어쩌면 생각이 풍요롭고 담담해 지는 마음을 배우고 있음이 좋다. 날마다 일상에서 바쁨을 벗어나 나를 바라보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이 나를 나답게 하는 삶일까 매번 머리에 떠나지 않는 상념들이다.

'구름은 바람 없이 움직일 수 없고 사람은 사람 없이 움직일 수 없다.'  오늘 유튜브에서 김창옥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너무나 마음에  와서 닿는 말이라서 공감이 된다. 사람은 사람 없이 움직일 수 없다. 오늘 가을 속으로 들어와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날이다.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가을 나들이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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