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솔밭정 부대짜개부평 솔밭전 부대찌개는 간 마늘과 독자적 양념장이 비법이다. 칼칼하면서 시원하고 개운하면서 깊다.
이상구
부평엔 1945년 이후 계속 미군부대가 있다. 도시 한복판 노른자위 땅이다. 그 부지를 반환하고 철수하기로 했지만 아직 남은 시설과 인력은 있다. 그 주변으로 부대찌개 집이 여럿 있었다. 부평시내에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 전통의 부대찌개 집들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그 자리를 프렌차이즈 식당들이 대신했다. 그 와중에도 유독 한 집은 살아 있다. 1년 전쯤 부평에 다시 문을 연 '솔밭정 부대찌개' 집이다.
이 식당의 서일호 사장은 80년대 초 부평시내에서 같은 상호의 식당을 냈었다. 시내의 가게 임대료가 오르는 바람에 외곽을 돌아야 했지만 '솔밭정'이란 상호를 바꾸진 않았다. 사계절 늘 푸른 소나무를 닮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지금은 손님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추려 찌개백반 따위의 다른 메뉴도 곁들이게 됐지만 부대찌개는 언제나 누가 뭐래도 대표 메뉴다. 처음 할 때부터 쭉 그래 왔다.
이 집 부대찌개 레시피는 간결하다. 번잡스럽게 이것저것 넣지 않는다. 햄과 소시지에 쑥갓 몇 대, 파와 무 정도가 들어갈 뿐이다. 그 식자재들은 개업 때부터 똑같은 브랜드를 쓰고 있다. 다른 걸 쓰면 맛이 안 난단다. 물론 '미제'다. 허전할 것 같은 빈틈을 서 사장의 특제 양념이 채운다. 놀랍도록 깊은 맛을 낸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간 마늘이다. 1인분에 보통 차 숟갈로 세 개쯤 넣는다. 마늘의 알싸한 향이 배여 맛은 한층 풍요로워진다. 칼칼하고 개운하다.
"사실 저도 어릴 적에 꿀꿀이죽을 먹었어요. 근데 그때만 해도 누린내 같은 게 조금 났거든요. 그럴 때 마늘 한 주먹 갈아 넣으면 시원하니 맛이 났죠. 그 방식으로 40년을 온 겁니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마늘이 건강에도 좋다고 하잖아요."
서일호 사장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부대찌개로 장사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가게를 옮겨 다녀도 단골들은 어찌 알고 찾아온다. 그 정성이 고마워서라도 장사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장사가 조금 된다 싶으면 임대료 올려 쫓아내곤 했던 건물주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서 사장은 그게 제일 걱정이다. 어느 기사의 제목처럼 착한 건물주는 아직 없는가 보다.
부대찌개는 이 땅에 들어온 미군과 그 역사를 함께 한다. 오늘날 의정부나 송탄이 부대찌개로 유명해진 건 그 도시에 오래도록 미군이 주둔해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은 사실상 주한미군의 베이스캠프 격이다. 꿀꿀이죽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인천 부대찌개는 없다. 굳이 '부대찌개는 인천이 원조'라고 말하는 이도 없다. 아직도 노포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보면 그걸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어쩌면 인천 사람들에게 그건 그냥 숨기고 싶은 흑역사여서 그럴 수 있다. 아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정말 큰 상처는 쉬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시간이 늘 자랑스러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아프고 시린 시절의 기억은 오늘을 사는 힘이 되어 준다.
인천상륙작전의 포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삶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처참한 절망의 공간에서도 인천 사람들은 꿋꿋하게 생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천 사람들은 그렇게 어질지만(仁)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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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하면 '의정부'만 떠올리다니... 참 안타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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