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기후변화의 심리학>
갈마바람
기후변화라는 이슈는 자연과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대개의 과학자들은 균형 잡힌 언어,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 언어를 사용하여 기후변화 이슈를 더 잘 설명해보려고 시도한다. 그게 과학적 태도니까!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어느 나라에서든 기후변화 이슈가 내포하는 독특한 문제가 시작되었다. 이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Homo Sapiens)여서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인간을 행동하게 만드는 직접적 동력이 '감정'인 까닭에 생겨난 현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개인적 이야기와 감동적 사연에 확실히 좀 더 귀를 기울이며, 하나의 이슈에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메신저)이 얼마나 그 이슈에 헌신적인지 관찰·판단하면서 향후 자기의 반응을, 종합적으로 결심한다. 그 결심을 근거로 그 이슈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 및 태도를 결정한다. 기후변화도 그러한 이슈들 중 하나다.
요컨대 인간은 기후변화 이슈가 내포하는 메시지를, 그 이슈를 전달하는 메신저와 분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관(가치관), 삶의 방식에 연결지어 통합적으로 인식한다는 거다.
기후변화의 책임소재를 따지다 보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활동은 그것이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이어서, 불가피하게 '원인'과 '의도'를 다룬다. 따라서 원인을 해체하고, 의도를 문제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발생하기를 바라는 지구인은 아무도 없다. 기후변화를 일으켜서 누군가를 고의로 해치고 지구를 망가뜨리겠다고 맘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262쪽).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그건 '자폭'이니까.
그런데, 탄소배출량 문제를 직설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탄소배출 산업에 연관된 사람들(기업가, 해당기업의 노동자들, 그 산업체 생산물을 사용하는 일반소비자들)을 직접 지적하고 공격하는 모양새가 된다.
일반소비자로서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탄소배출기업들이 생산한 에너지와 편리한 문물을 포기하고 '의도적 불편함'을 감수할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실천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선택을 해보라고 제안하는 순간 그 말은 매우 부드러운 어조일지라도 그 선택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강요나 공격에 다름 아니다.
공격받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사람은 강하게 방어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들중 어떤 이는, 기후변화 활동가들이 아이폰을 사용하면 '너부터 실천하지 그래' 하며 비웃고, 국제회의 참석차 비행기를 타면 분노하는 것으로 공격(혹은 반격)을 감행한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운동영역에는 또다른 미묘한 함정도 있다. 마셜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몇몇 생활 방식을 권장하는 운동방식이 파생하는 사각지대에 대하여 분석한다. 그는 먼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윤리적 생활방식' 캠페인이 강조하는 여러 실천항목들을 3단계로 구분한다. 그런 다음, 2번과 3번에 치중하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운동방식이 품은 문제점을 약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1. 기후변화 대처에 의미있는 행동들: 출퇴근 거리 축소, 단열재와 효율적 난방기기 설치
2.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동들: 자동차 공회전 하지 않기, 가전제품 대기전력 차단
3. 사실상 의미없는 행동들: 비닐봉투 사용하지 않기, 휴대전화 충전기 코드 뽑기 - 274쪽
마셜은 2번과 3번의 행동을 하지 말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위와 같은 구분이 들어있는 그의 문장을 책의 맥락을 따라 섬세하게 읽으며,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마셜이 특히 문제삼는 것은, 3번을 여러 번 실천하고서 스스로 도덕적 면죄부를 자신한테 주는 현상이 발견된다는 지점에 놓여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실천행동을 기후변화 대처운동의 주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아울러 (전 인류사회로 넓혀서 볼 때) 개인들의 실천행동이 실제로 의미있는 기후변화 대처활동으로 확장된다는 예측이 맞아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한다.
후속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 위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조차도 관심이 있다는 표시로 간단한 행동 하나 정도는 금방 실천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는 않았다. -279쪽
감정적 뇌를 돌보며, 그것이 움직이도록
그렇다면, 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사회변혁운동을 어떻게 펼쳐나가면 좋을까? 마셜의 제안 중 하나는 다름이 아니라 종교적인 지평에 이어져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행동을 '타협할 수 없는 신성한 가치'로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타협할 수 없는 신성한 가치가 되면 사람들은 매우 열심히, 누가 뜯어말려도 그 운동에 열렬히 참여한다.
일례로 낙태운동이나 동성애에 관한 한 '찬/반'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굉장한 강도의 열심을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마셜은 "종교는 정의와 논리적 설명보다는 담론과 이미지, 입법에 의해 전파된다"고 주장했던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의 관점을 의미있게 환기한다. 결론적으로 마셜은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기후변화를 신념의 여정처럼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이 여정에는 개인적인 계시와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시기도 있을 것이다. 신념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도 있기 때문에 재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람들이 기후과학을 받아들이려 애썼던 순간과 과정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도록 격려하라. -335-336쪽
절대로 당신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타인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지 말라. 실제로 당신이 뭔가를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은 당신과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이 그것을 싫어할 것이라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 우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비탄과 불안을 인식해야 하며 모순, 양가감정, 상실, 애도와 같은 감정을 인정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338쪽
요는, 기후변화 대처활동을 아주 개인적이며 사적으로 여기되, 동시에 사회적이며 전세계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등떠밀려 하는 억지춘향 식이 아니어야 하고, 뭔가 하고 있다는 심정적 위안도, 넌 왜 심각성을 못 느끼느냐는 심리적 지적도 자중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역사적으로 여러 운동들을 경험해왔다. 자유를 얻고자 목숨을 잃었고, 공정한 참정권을 공유하기 위해 화도 냈고, 피도 많이 흘렸다. 평등을 위해 분신을 했고, 독재타도를 목표로 운동하다가 고문을 받거나 감옥에도 갇혔다.
이 책은 인간이, 자기가 속한 사회를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려는 그 모든 진보적 운동에 참여했었던 사람들이 사실상 '이미 갖췄어야 했었을 행위지침'을, 인류생존의 갈림길에서 의미심장하고 심각하게 확인해준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 행위지침이란, 바로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활동이다. 나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주고, 남의 마음도 정확히 읽어주고, 나아가 서로 공감하는 데에서 활동(운동)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모든 사회변혁운동의 기저에 꾸준히 살아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민주, 정의, 외교, 통일, 여성, 부동산, 산업재해, 환경 이슈 등에서 극단화된 진영논리로 상대진영을 공격하거나 비웃고 비틀기 바쁜 요즘의 한국사회 모든 구성원(운동가&비운동가)들에게 이 책이 '필독서'가 되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다.
기후변화의 심리학 - 우리는 왜 기후변화를 외면하는가
조지 마셜 (지은이), 이은경 (옮긴이),
갈마바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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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위즈덤하우스), 해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지식공작소), 환경살림 80가지(2022세종도서, 신앙과지성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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