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전문가 패널 질의 회의록 중 한국 정부가 EU측에 한 질문 "한국의 병역법 개정안이 강제노동협약에 부합하는가?"
고용노동부
한국 정부가 앞에서 자신들이 설명한 병역법 개정안이 ILO 강제노동 협약에 부합한다고 보는지 이번에는 EU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EU는 당황스럽게도 "자신들은 이 문제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관심사는 강제노동 협약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 여부이지 한국법과 강제노동협약의 양립불가능성에 대한 것은 아니다" 라고 답변한다. 아니, 그러면 왜 EU는 한국정부에게 병역법 개정안이 강제노동협약과 부합하는지 물었던 것일까?
이유는 EU가 밝힌 관심사에서 드러난다. 애초에 EU는 강제노동으로서 사회복무제도를 문제삼았던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ILO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FTA를 위반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즉 바꾸어 말하면 국내법을 어떻게 개정하든지 간에 한국정부가 ILO기본협약만 맺을 수 있다면 EU측은 문제삼지 않을 것이며, 그 이후의 국내법과 협약의 충돌은 ILO와 한국 정부와의 문제이지 EU의 소관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복무제도 자체는 다른 노동법 개정사안과 달리 직접적으로 산업경쟁력에 영향을 준다고 단정할 수가 없기 때문에 무역의제로 다루어질 수 없는 측면이 있다. EU의 강제노동협약에 대한 질문은 한국 정부의 성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지 그 내용 자체를 문제삼기 위한 질문은 아니었던 셈이다.
따라서 11월 30일에 있을 전문가패널의 최종판단에서 강제노동협약 관련한 전향적인 판단은 크게 기대할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다른 사안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 받아들여져 대한민국이 협약위반국으로 인정된다 할지라도, 강제노동협약에 대한 한국정부의 해괴한 접근법은 주요한 위반사항으로 다루어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결국 ILO에 공을 떠넘기는 것이다.
사회복무제도 폐지 없는 강제노동협약 비준은 무의미
이미 필자는 지난 기사에서 사회복무제도가 아무 명분도 이익도 없는 대한민국 징병제 폐단의 산물임을 지적한 바 있다. (
관련기사 : 30년간 무시해왔던 사회복무제, 폭탄돌리기는 끝내야 한다 http://omn.kr/1oe82 )
복무가 부적합한 사람들까지도 징집해서 강제노역을 시키고, 거기에 더해 이등시민으로 낙인찍는 것에 대다수가 문제의식을 품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순종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정부는 이것을 두고 현역복무자와의 '형평성'을 말하고, 공공부문에서의 '필요성'을 말한다. 얼마나 더 많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형평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을 공짜나 다름없이 부려먹어야 그 '필요성'이라고 하는 것이 사라질 것인가.
노동계의 침묵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ILO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민주노총이 분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관심은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에 쏠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약 비준을 통해 공무원과 플랫폼노동자를 비롯한 좀 더 많은 노동자들이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노조할 권리'를 획득하는 것 역시 기념비적 진전일 것이다. 하지만 두 거대 노총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사회복무제도의 강제노동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인 무관심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성명과 논평에서 한 줄이나마 언급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1999년, 일제의 강제징용이 ILO 강제노동협약 위반임을 이끌어 냈을 때 민주노총이 앞장섰던 역사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강제노동 문제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그 누가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정부가 수십 조에 달하는 일자리 예산을 쏟아부을 수 있다고 한다면 현역병 임금의 정상화와 사회복무요원들이 담당했었던 공공영역의 보조와 돌봄노동을 정당한 노동으로 전환하는 데 역시 수십 조를 충분히 들일 수 있는 것 아닌가? 한쪽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퍼붓듯이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실업률을 관리하고, 그 공공기관의 한켠에서는 노예노동을 부리는 이 슬픈 공존을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하는가? 정부의 꼼수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강제노동국'이라는 타이틀은 대한민국 징병제의 기괴하고 광범위한 착취시스템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정부는 어차피 국제망신으로 귀결될 꼼수입법을 철회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 사회복무제도 폐지와 병역제도 개혁을 검토해야 한다. 사회복무제 폐지 없는 ILO강제노동협약 비준은 무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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