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심장선씨의 유가족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안전보건단체 기자회견 시작 전 경찰이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짓밟는 일이 벌어지자 경찰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 영흥화력발전소 사망 노동자 현수막 짓밟은 경찰 ⓒ 유성호
남동발전은 사망한 심씨에게 '상차업무를 시키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일 공공운수노조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심장선씨의 장례식장에서 공개한 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 작성 '회정제 설비 운전 지침서'에는 "석탄재 적재 장치의 분출구를 화물차 적재함 문에 맞추는 것은 화물기사의 업무"라는 내용이 적혔다.
또 영흥화력본부가 심씨를 포함한 화물기사에게 보낸 '반출 차량 공지사항'에도 △화물차 상부에 올라가 석탄재가 넘치는지 만차시까지 위에서 지켜볼 것 △화물기사 실수로 석탄재가 탱크를 넘치는 경우 차량이 대져 있던 계근대(차량의 중량을 재는 곳) 주변을 청소할 것 등이 명시됐다.
공공운수노조는 "남동발전은 인력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상차 작업 별도 인력이 존재했던 것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현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 역시 이를 증언했다"면서 "사라진 노동자들의 자리를 화물노동자들이 대체했다. 심장선씨도 이렇게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9일 국회 앞에서는 노동안전보건단체가 심씨의 유가족과 함께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심씨의 아들은 "여전히 회사(남동발전)는 자기들 잘못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일했던 하청업체에 잘못을 다 뒤집어씌우고 있다"면서 "아버지한테 사과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할지를 밝히라"라고 요구했다.
함께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도 "△화물노동자에게 상하차 작업을 금지시키고 안전설비를 마련하며 △안전운임제를 모든 화물노동자에게 적용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노동자가 줄줄이 사망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한국남동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 등 발전 5사에서 327건의 산재사고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33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8명을 제외한 326명(97.6%)이 하청노동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사망자만 따졌을 때다. 인권위는 해당 기간 동안 사망한 20명 모두 하청노동자였다고 밝혔다. 발표 당시 5개 발전사 산하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는 약 4600여 명으로 전체 노동자에 27%에 불과했다.
참석자들은 심씨의 죽음에 대해 "2018년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발전산업 안전관리 종합대책'이 발표됐지만 여전히 발전소 내 안전관리는 미비했다"면서 "2020년 9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상차작업을 하던 중 스크루에 깔려 화물노동자가 사망했고, 심장선 노동자 역시 화물노동자가 위험한 상차작업을 혼자 진행하다 사망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동발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유항열 (남동발전) 사장도 적극적으로 해결한다고 밝힌 상태"라면서 "현재 유족과 합의점을 찾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9일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경찰이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참석자들의 현장 출입을 막고 주변을 강하게 통제한 탓에 시작부터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날 주최 측은 기자회견 장소를 지난 7일부터 사흘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하는 비정규직 농성장 앞에 잡았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에는 8명이 참석했지만 경찰은 기자회견장 바로 뒤쪽에 단식농성을 진행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어겼다"면서 기자회견을 불법 집회로 판단했다.
과정에서 경찰이 고 심장선씨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전투화로 짓밟는 바람에 주최 측과 경찰 간 몸싸움이 일었다. 심씨의 아들은 아버지 이름 옆에 남은 전투화 발자국을 매만지며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