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등'의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해 검찰이 법원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17일 부산지법 앞에서 구속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김보성
검찰이 강제추행 등의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한 가운데, 피해자 A씨가 법원에 직접 탄원서를 제출했다. A씨는 "부모님께는 출장이라 둘러대고 잠깐 집을 나와 글을 쓰고 있다"며 "후안무치한 오거돈을 구속해달라"고 호소했다.
사건 8개월이 지났지만 A씨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탄원서을 통해 "약 없이는 한 시간도 잠들기 힘들어졌다"며 또한 "이름도 모르는 약을 입 안 가득 털어 넣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최근 심경을 표출했다.
그는 "모두 오거돈, 4월 7일 그날 시장 집무실에서의 역겨운 일 때문"이라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 하겠다"고 가해자의 구속을 촉구했다.
오 전 시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18일 부산지법에서 열린다. 다음은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17일 공개한 피해자의 탄원서 전문이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 피해자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강제추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언젠가 쓴 입장문에서 '이렇듯 제 소개를 하는 것이 익숙해질까 두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로 익숙해진 저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지금 한 호텔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모님께는 출장이라 둘러대고 잠깐 집을 나왔습니다. 기소가 올해를 넘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요즘 들어 더욱 불안해져 집에서 멀쩡한 척을 하는 것이 버거웠던 탓입니다.
이곳에 있으니 추워진 날씨가 새삼 어색합니다. 제 시간은 4월에 멈춰있는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창밖 모습이 지금과는 다르게 보였을까, 의미 없는 가정을 해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4월 이후 제 모습이 많이 변했습니다. 거짓말을 가장 싫어했던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숨기고 속이는 것이 많아졌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신경정신과 진료가 익숙해졌습니다. 울면 지는 것이라며 초등학교 수련회에서도 꾹꾹 참았던 제가 요즘에는 3초 만에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살이 찔까 봐 저녁도 거르던 제가 한밤중에 일어나 기억에도 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집 떠나가라 코를 골면서 잤던 제가 약 없이는 한 시간도 잠들기 힘들어졌습니다. 유난스럽게 건강해 감기약 먹는 일도 드물었던 제가 이름도 모르는 약을 입 안 가득 털어 넣으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모두 오거돈 때문입니다. 4월 7일 그날 시장 집무실에서의 역겨운 일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제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지난번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오거돈 측은 '이중적인 자아 형태에서 비롯된 인지부조화'라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저 주장이 사실이라면 치매 수준의 인간이 광역시장 일은 어떻게 했으며, 저를 특정해 집무실로 불러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 인간의 인생에서는 강제추행이 얼마나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기억도 못 한다는 것입니까.
사퇴 당일까지도 '5분간의 짧은 면담', '경중을 떠나',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며 책임을 인정하는 대신에 동정에 호소하며 끝까지 저를 기만하고 농락한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파렴치한입니다.
그런 인간이 강제추행의 증거 그 자체인 피해자인 저를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을지 너무나 불안하고 무섭습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오거돈에게 사주받은 사람이 저를 찔러 죽이지는 않을까 매일 저녁 집에 오는 걸음마다 덜덜 떨며 뒤를 돌아봅니다. 사건 직후 '저는 절대 자살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갑자기 죽으면 반드시 부검해주세요'라는 글을 쓰고 지장을 찍어 집 어딘가에 숨겨놓은 것도 이런 불안함 때문입니다.
제 주변의 적잖은 사람들이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합니다. 직장에서도 빨리 네 자리로 돌아와 일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제가 가장 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너무 무섭습니다. 오거돈은 부산에서 신나게 돌아다니고, 오거돈의 측근들은 시청에서 여전히 고위직으로 근무 중입니다.
지난 6월 구속수사가 이뤄졌다면, 기소가 앞당겨졌을 테고 어쩌면 지금쯤 재판이 한창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거돈 측근들과 마주치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복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적 사건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냐'는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들립니다. 재판은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 사이에서는 저만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 일이 제발 끝나면 좋겠습니다. 부디 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저 후안무치한 오거돈을 구속해주십시오.
존경하는 재판장님,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음식물 쓰레기에 빗대는 것이 음식물 쓰레기에 미안할 정도인 오거돈을 부디 구속해주십시오.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만이라도, 올해 연말까지 만이라도 제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가해자는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는 가족들로부터도 숨어 구속을 탄원하는 글을 쓰는 이 상황을 부디 안타깝게 여겨주십시오. 긴 글 시간들여 읽어주심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2020. 12. 17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공유하기
[전문] 피해자 탄원서 "후안무치 오거돈을 구속해주십시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