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치러진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장 내 사진(장소:대전 괴정고등학교).
대전교육청
교사가 가장 수업하기 힘든 때는 언제일까. 시험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종일 아이들의 눈이 풀려 있다. 그걸 보고 나무라기도 뭣하다. 그동안 시험 준비하고 치르느라 고생했는데, 수업 시간 딴청 좀 피운다고 대수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최고를 경신하는 와중에 기말고사가 막 끝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강화되면 어쩌나 학교는 노심초사했다. 교문이 닫혀 시험을 치르지 못하면, 이미 치른 중간고사 결과를 기준으로 성적을 환산하도록 규정돼 있긴 하다.
성적 관리 규정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 적용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돌발 변수가 많아서다. 중간고사를 사정상 치르지 못한 아이도 있고, 특성상 기말고사 한 번만 치르는 과목도 있다. 수행평가의 실시 여부와 반영 비율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 한둘 아니다.
그래선지, 현재 방역지침 상 1/3만 등교해야 하는데도 교육청은 시험 기간만은 예외로 두고 있다. 심지어 확진자가 아니면 의심 증상이 있는 경우에도 응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별도의 시험실을 마련해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얼마 전 수능 때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해당 시험실 감독 교사는 내내 방호복을 착용해야 했다. 의심 증상이 있는 아이들은 쉬는 시간 시험실을 함부로 나올 수도 없고, 사용하는 화장실도 따로 지정됐다. 기말고사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다행히 기말고사는 무탈하게 끝났다. 시험은 끝났지만, 겨울방학이 시작되려면 아직 20일 가까이 남았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올해 연간 수업일수가 190일쯤 되니 무려 1/10에 해당하는 꽤 긴 기간이다. 방학만 기다리며 허송하기는 아까운 시간이라는 이야기다.
교사가 '보살'이 될 때
시험이 끝난 이튿날, 예상대로 교실은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왁자지껄 아수라장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들끼리 쓰는 알 듯 모를 듯한 은어와 다소 거친 욕설이 뒤섞여 빼꼼하게 열린 교실 창문을 통해 복도까지 들렸다.
절반은 여름철 매미 떼처럼 칠판에 붙어 무언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학급 성적표다. 시험 첫날 치른 과목의 성적이 벌써 산출된 모양이다. 하긴 OMR 카드에 기입하는 선다형 시험의 경우, 학년 전체의 성적을 처리하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교과 담임교사가 성적표를 칠판에 붙여놓은 이유는 아이들의 확인 서명을 받기 위해서다. 최종 성적 처리 전, 자신의 성적을 직접 확인시키는 절차다. 이를 통해 교사의 출제 오류나 정답 표기의 실수 등을 찾아낼 수도 있다. 학교마다 이의 신청 기간을 두는 이유다.
아이들은 대개 자신의 성적보다 친구의 그것에 더 관심이 많다. 또, 점수보다 등위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성적표에 등위는 별도로 표기되지 않지만, 애써 일일이 친구들과 비교해가며 자신의 위치를 알아낸다. 서명 절차의 취지는 이미 온데간데없다.
성적이 공개된 교실은 정확히 둘로 쪼개진다.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이 조금도 낯설지 않다. 성적표를 보고 뒤돌아서는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그의 점수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총 여덟 과목이니, 이런 소란은 앞으로 일곱 번 더 겪어야 한다.
이 와중에 진도를 나가려면 교사는 '보살'이 되어야 한다. 교과서를 챙겨온 아이들조차 드문 마당에 수업은 무슨. 책상 위는 그 흔한 필기도구 하나 없이 휑뎅그렁하다. 몇몇 아이들은 일찌감치 쿠션을 올려두고 잠잘 준비를 하고 있다. 기말고사 후 방학을 앞둔 교실 풍경이다.
나도 교과서를 덮었다. 철딱서니 없는 몇몇 아이들은 손을 들어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시험도 끝났는데 오늘 자습 안 하나요?" "시험을 앞두고도 자습하자더니, 시험이 끝난 뒤에도 자습하면, 대체 수업은 언제 하니?"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괜한 말을 한 성싶다.
학생들이 믿는 공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