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은 하나의 '바퀴'처럼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사진은 둘루스 홈페이지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여성폭력 구조를 도식화한 그림. DAIP는 친밀한 상대가 가해자가 될 경우 관계에서 비롯된 요소들이 모두 폭력에 이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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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런 시스템은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미국 미네소타주 둘루스에 있었습니다. 1980년 형사사법 제도를 개혁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이 조직의 이름은 DAIP(Domestic Abuse Intervention Programs, 가정폭력 개입 프로그램, 다이프)입니다. 2014년 유엔여성(UN Women)으로부터 여성 폭력을 근절한 공로로 세계최고정책상을 받았을 정도로 그 신뢰도가 검증된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네트워크입니다. 911, 경찰, 검찰, 보호관찰관, 피해자 지원 단체, 병원 등이 긴급 상황을 포함해 범죄 정보를 공유하고 DAIP를 통해 각 기관별로 어떻게 개입할지 조율하고 적절한 자원을 지원합니다. 둘째, 그 네트워크는 철저히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현지에 다녀온 한국여성의전화는 보고서를 통해 "피해자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지역사회로 이동시킨다는 원칙 아래 다자 협력을 이끌어내는 협력적 대응"으로 이 시스템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셋째,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주체입니다. 여러 협력기관의 대응 사무를 조정하는 사무를 이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와는 그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경찰과의 정보 공유가 어렵습니다. 저희가 만난 한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수사 정보 공유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지자체 관계자 역시 저희와의 만남에서 "법적으로 교제폭력의 경우는 경찰과의 범죄 정보 공유가 안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말도 있었습니다. "기존에 있는 법과 기존에 있는 조직을 활용하는 것이 행정력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희는 이 말을 듣고 여성폭력방지기본법처럼 아동의 안전과 보호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고 규정한 아동복지법을 찾아봤습니다. 제27조의 2, 1항을 보니 "사법경찰관리는 아동 사망 및 상해 사건, 가정 폭력 사건 등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경우 아동학대가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시ㆍ도지사, 시장ㆍ군수ㆍ구청장 또는 보장원의 장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권인숙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저희와의 인터뷰에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법이 바뀌는데는 오래 걸립니다. 법이 바뀔 때까지 교제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또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저희는 법과 현실 사이의 그 공백을 최소화하는 책임이 행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방법은 그동안 여러 지자체 여성정책 보고서를 통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상담 관리를 가정 폭력 범주에 두고 상담 및 의료·법률지원을 하는 방안, 해바라기센터와 협조하여 의료 지원과 수사 진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또는 여성 긴급전화 1366의 현장 상담과 연계 기능을 강화하여 의료비 및 법률 서비스 등의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예산과 전담 인력을 두는 방안 등을 놓고 지역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파악됨." (2019년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 데이트폭력 현황 및 그 대응 방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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