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0일, 일본 교토에서는 영화 <자백>의 주인공 중 한 분이신 재일동포 모국유학생 고문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고 김승효 선생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고인은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 후 가족 납골묘에 안장됐다.
고문 피해자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고인을 약력을 소개하며 고인의 재심변호인으로서 고인께 드리는 추모의 편지를 영전에 바친다. 삼가 고 김승효 선생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고인의 생애>
- 1950. 04. 16. 일본 교토에서 김창수의 6남매 중 3남으로 출생
- 1963. 03. 일본 교토 소재 사이잉 소학교 졸업
- 1966. 03. 일본 교토 소재 사이잉 중학교 졸업
- 1969. 03. 일본 교토 소재 가스라 고등학교 졸업
- 1969. 04. 일본 교토 소재 리츠메이칸 대학교 철학과 입학
- 1972. 10. 리츠메이칸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민단에서 실시한 모국 유학생 선발시험에 응시 합격
- 1973. 03. 리츠메이칸 대학교 3학년 중퇴 후 모국 유학
- 1973. 04. 서울대학교 내 재외국민 교육연구소 입소
- 1973. 12. 재외국민 교육연구소 연구과정 수료
- 1974. 04. 서울대학교 교양과정부 진학
- 1974. 05. 03. 서울대학교 교양과정부 재학 중 하숙집에서 영장 없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에 의하여 강제연행
- 1974. 06. 28. 국가보안법위반, 반공법위반, 간첩미수의 혐의로 서울형사지방법원에 기소
- 1974. 11. 04. 1심은 간첩미수의 점을 제외한 나머지 혐의사실에 대하여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2년 선고
- 1975. 03. 18. 2심 서울고등법원은 1심의 형이 지나치게 과중하다는 이유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과 자격정지 8년을 선고
- 1975. 06. 24. 대법원은 간첩미수의 법리 오인을 이유로 2심을 파기환송
- 1975. 09. 26. 파기환송 2심 서울고등법원은 위 대법원판결의 취지에 따라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2년 선고
- 1975. 12. 23.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여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2년 확정. 고인은 항소이유서와 상고이유서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반국가단체에 가입하거나 그로부터 지령이나 금품을 받은 사실,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 동조한 사실이 없다고 기재
- 1976. 02. 25. 서울구치소에서 광주교도소로 이감. 고인은 고문으로 얻은 정신분열증으로 수감생활 중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대소변을 그냥 보는 등의 행동을 하여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폭행과 따돌림을 당하였으나 교도소 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
- 1977. 05. 5월 10일자 재소자신분카드의 동태사항 기재에 의하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묵묵히 서 있거나 앉아 있어 교도소 측도 정상이 아닌 거 같아 주시하고 있었고, 같은 해 5월 7일에는 갑자기 실신하기까지 했었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음. 그럼에도 광주교도소는 칠공장에서 독성 물질을 사용하니 정신착란을 일으킬까 우려된다며 작업에서만 제외하였을 뿐, 달리 정신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음
- 1979년경부터는 어머니가 면회를 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1980년경부터는 교도관에게 폭언을 퍼붓는 등 이상증세가 악화
- 1981. 08. 15.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 출소. 출소 후에도 가족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밖에 나가 누가 오지 않았나 확인하고, "여기 있으면 잡히니까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반복하는 등 이상한 언동을 되풀이. 이를 보다 못한 고인의 어머님께서 정신병원 치료를 권하자 어머니를 폭행, 이 때문에 가족들이 한국의 정신병원에 1981년 8월부터 같은 해 12월 말까지 입원시킴. 이후 퇴원하였으나 여전히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고 혼잣말만 계속하는 등 이상증상을 보여 가족들은 고인을 일본으로 데려간 다음, 정신병원에서 통원치료. 그러나 고인은 점차 약을 잘 먹지 않고, 1982년 5월 경부터는 온종일 정좌 자세로 손을 무릎에 올리고 꼼짝도 하지 않거나, 피해망상에 빠져 가게 종업원이 자신의 옷을 훔쳐 갔다고 주장하며 그를 폭행하고, 밥을 늦게 준다는 등의 이유로 어머니를 구타함. 아버님이 정신병원 치료를 권하자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모두 죽이겠다"며 아버지를 구타하는 등의 폭력적 행동을 보여 결국 1982년 7월부터 일본의 정신병원에 입원
- 1982. 07~2003. 3. 10. 약 21년간 정신병원에 입원
- 2003. 03. 10. 고인의 희망과, 동생을 병원에서 죽게 하기는 싫다는 형님의 의사에 따라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였고, 돌아가실 때까지 형님이 고인을 보살피며 정신병원 통원치료
- 2016. 11. 9.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청구
- 2018. 06. 11. 재심개시결정
- 2018. 08. 23. 검사 무죄 구형
- 2018. 08. 31. 재심 무죄 선고
- 2018. 09. 8. 재심 무죄 확정
- 2020. 12. 26. 별세(향년 70세)
부디 저희들을 용서해주세요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늘 선생님의 교토 댁을 방문해 '이제는 한국에 오셔도 안전하다'고 한국 방문을 권유하던 재심 변호인 장경욱 변호사입니다.
재일 양심수 선생님들과 함께 처음 선생님을 찾아뵙던 날이 떠오릅니다. 우리말로 "나는 무죄야"라고 하셨지요. '한국은 나쁜 나라'라는 피맺힌 말씀을 듣던 순간 눈물을 흘렸습니다. 꼭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 조금이나마 선생님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형님께서 대신 재심청구신청을 했고 검사가 재심무죄구형까지 하는 과정을 거쳐 선생님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는 재심무죄 판결은 확정되었습니다. 재심법정에 나와 '나는 무죄야'라고 외치실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끝내 한국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2018년 10월 교토 댁을 방문하여 선생님께 재심무죄 판결문을 전해드렸을 때도,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무덤덤하셨습니다. 저는 무죄 판결문을 전해드리면 병이 깨끗이 나아 제게 억울한 한을 풀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실 줄 알았습니다.
다 압니다. 선생님께 도대체 재심 무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청춘을, 꿈을, 모든 것을 빼앗아간 나라, 악몽과도 같은 고문의 나라에서 선생님은 간첩의 낙인과 병을 얻고 제정신으로 살아갈 힘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선생님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고문의 후유증과 외로이 싸우며 한국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제정신을 찾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홀로 고문병과 싸우시느라 부모님의 장례식에 가실 생각도 못 하시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병을 이기고자 집밖으로 외출도 일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절망과 고독에서 벗어나 자유의 영혼을 찾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선생님, 왜 모국 유학을 오셨습니까. 잔인한 분단의 동토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유학 오셨습니까. 모국어 배우는 것이 그렇게 좋으셨습니까. 조국의 산과 들의 풍경, 조국의 인정이 그렇게도 그리웠습니까. 일본 신문과 잡지에 보도된, 분단된 조국의 북녘과 남녘의 기사를 한국의 동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까.
일본 언론에 보도된 기사 내용이 여기서는 위험한 줄 모르셨습니까. 그걸 들은 하숙방 동료들이 신고할 줄 정말 모르셨습니까. 하숙방 동료들에게 중앙정보부가 김대중을 납치했다는 소식을 왜 전하셨습니까. 일본에서 본 한국 대학생 시위 기사 이야기를 왜 하셨습니까. 왜 경제면에 실린 정부의 대기업 경제지원 정책에 대하여 토론을 하셨습니까.
선생님, 부디 용서해 주세요. 모국어도 제대로 쓰고 말하지 못하는 선생님이 조국에서 겪은 서슬 퍼런 고문과 간첩조작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홀로 고문병과 맞서 싸우신 선생님의 고통을 외면한 우리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선생님, 떠나시는 길에 꼭 묻고 싶습니다. 그리도 그립고 아름다웠던 고국에 유학 오신 거 후회하시죠. 다시는 하늘나라에서도 한국을 찾지는 않으실 거죠.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시고 영혼이라도 이 땅에 오셔서 청춘의 꿈과 아름다운 조국 땅을 만끽하시기를 바랍니다.
잔인한 분단조국의 멍에를 벗기 위해 싸우는 동포들을 위해 하늘나라에서 든든한 후원자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분단비극을 극복하는 길에 함께 해 주소서.
선생님, 사랑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래도 조국을 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시면 꼭 통일된 조선의 아들로 태어나시기 바랍니다. 교토의 학창시절 잘 생기고 멋진 청년 김승효의 모습 그대로, 전생에 빼앗겨버린 청춘의 꿈을 마음껏 펼치시는, 건강하고 행복한 생을 살아가시기를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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