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문화를 찾아서 편간위원회’가 남성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펴낸 <진주문인>.
한국문화사
1920년대 진주 문인으로 김병호 시인, 엄홍섭 소설가 등이 있고, 소년운동을 펼친 강영호 선생이 남긴 글이 있다.
1920년대 후반에 나온 <신시단>은 우리나라 지방 최초의 시잡지다. 김찬성은 편집후기에서 "우리 문단에 시잡지가 처음 되는 것만치 반응이 상당히 컸다"고 했다.
강희근 시인은 "창간호를 내고 종간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며 "그렇게 밖에 될 수가 없었던 것은 검열난과 재정난이 있었고, 엄홍섭 등 편집자의 사정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사례가 있었으며, 집필자들이 중앙 지면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등이 그 까닭이었다"고 했다.
<진주문인>에는 소설 "등신불"의 김동리 작가와 한용운 시인, 아나키즘 운동의 이경순 시인, 동아일보 기자였던 허민 시인의 시와 소설 등도 등장한다.
1950년대 진주에서는 설창수, 최계락, 이형기 시인에 이어 이병주 작가가 등장했고, 통영 출신인 박경리 소설가는 진주여고를 다니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김석규, 박재두, 강희근, 김여정, 리명길, 최용호, 김지연, 김호길, 김정희, 조평규, 박노정 등 문인들이 진주 문학을 주도해 왔다.
80~90년대는 허수경, 김언희, 유홍준, 김륭 시인이 나와 진주는 물론 중앙 문단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20년대 <신시단>, 1940년대 <영문>에 이어 1970~80년대 <문예정신> 등을 언급한 강희근 시인은 "진주는 중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주 스스로의 텃밭에 문예지를 가지겠다는 각오로 문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진주문화를 찾아서 편간위원회'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의 후원을 받아 20여년 동안 20여권의 책을 펴냈다.
그동안 <논개>(김수업), <남명 조식>(허권수), <형평운동>(김중섭), <1862년 진주농민항쟁>(김준형), <진주 옛 이야기>(안동준), <진주오광대 탈놀음>(정병훈), <진주의 지질과 화석>(서승조), <그대로 박생광>(김수현), <진주 사투리>(조규태), <진주 역사>(김해영), <명창 이선유>(최낙경), <진주의 옛건축>(고영훈), <진주성 촉석문>(황의열) 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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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시' '발상지' '최초' '전국 유일' 많았던 <진주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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