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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다 '불이익 받지 않을까?'

[주장] 대한민국 학교, 민주주의는 없다

등록 2021.01.18 09:28수정 2021.01.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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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그리고 교실. 학교는 민주주의의 배움터지만 가장 비민주적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는 공간이다. 이런 모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학교, 그리고 교실. 학교는 민주주의의 배움터지만 가장 비민주적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는 공간이다. 이런 모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 픽사베이


올해 내가 속한 중학교의 학생자치회 회의에 참여할 일이 있었다. 조용히 앉아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를 민주적으로 만들겠다는 이름의 익명 대화방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앞에 있던 학생회장에게 "북한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라는 질문을 해 "불쌍하다"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고서는 북한과 비교했을 때 우리 학교는 상당히 좋은 학교라고 말씀하셨다.

일단 교장으로서 내신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짧은 시간 내에 세 가지 탄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첫째는 학교의 민주주의 수준이 고작 북한보다 낫다고 좋아하는 것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학교장의 인식이라는 사실을 알며, 둘째는 이러한 말을 듣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생님들을 보며, 셋째는 이런 말을 듣고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보며 세 번 탄식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어떠한 법보다도 상위에 있는 대한민국 최상위의 가치이다. 헌법 제1조에 적힌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는 그 누구도 파괴할 수 없다. 예외란 없다. 헌법 앞에 학교는 '일개 학교'이고, 학교장은 '일개 학교장'일 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민주주의를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을 본 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과연 학교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과연 학교에서는 학생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고 있는가? 학교에서는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가?
     
고대 민주주의와 현대 학교의 민주주의를 비교해 보자. 고대 민주주의의 유명한 사례는 '아테네 민주주의'이다. 아테네의 성인 남성들이 아고라에서 토론하고, 다수결을 통한 의사결정을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구현이다. 비록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성인 남성만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기는 하나, 현대 민주주의의 기틀이 되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고대 민주주의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지금, 학교에서는 어느 수준의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는가? 학교의 학사일정, 재정 등 중요사항은 학생이 없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있다. 그래도 이러한 학교를 민주적인 학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학교의 주인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학교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학교장이 학교 내에서 가진 권한이 비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학교의 주인은 학교장이 아닌 학생이다. 학교장은 그저 공무원으로서 학교에 발령받아 근무하는 공무원일 뿐, 학교의 주인이 아니다. 그렇지만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학교장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아직 학교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토론이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다양한 의견 아래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과정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다양성, 민주성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도 없고, 민주적인 정당성을 확보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되새기며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 아고라는 광장 역할을 하며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 아고라는 광장 역할을 하며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 픽사베이

 
나의 경험을 하나 말해보겠다. 나는 학생회장단 선거에 출마해서 낙선한 경험이 있다. 나는 생활기록부 한 줄 채우려고 선거에 출마한 것은 아니다. 나는 선거에 출마하면서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교칙을 바꾸자는 공약을 냈고, "인권도 민주주의도 없는 학교에 안녕을 고하자!"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공약은 학생부의 검토라는 명목으로 삭제당했고, SNS에 올리는 의견 역시 검열받았으며 연설문 역시 사전 검열받았다. 내가 불이익을 받는 것은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죽어가는 학교의 민주주의를 보는 것은 견뎌내기 어려웠다. 결국, 학교 내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낙선했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두었다. 일상적인 민주주의 파괴가 자행되는 학교를 나는 민주적인 학교라고 할 수 없다.

학교는 다양성이 허용되는 공간이 아니다. 학생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실내화를 신으며 비슷한 머리를 가지고 학교에 다닌다.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은 '학생답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 다양성을 가르치는 학교가 이래서 되는가.


학교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허용되는 공간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다면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의견을 내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닌, 큰 결심을 해야만 의견을 낼 수 있는 학교는 민주적이지 않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가 이래서 되는가.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피로써 이루어낸 민주주의다. 1960년 이승만 정권과 부정선거에 맞서 일으킨 2.28 학생민주의거와 4·19혁명, 1979년 부산,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 민주항쟁,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호헌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친 6월 민주항쟁까지. 대한민국은 수많은 피를 흘리며 대통령 직선제라는, 민주주의를 얻어내었다. 그때 광장에서 목소리를 낸 여러 시민 덕분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중학생인 나는 독재에 맞서 싸운 적이 없어서, 독재에 맞서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최루탄을 맞고, 연행되어 가면서도 애국가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던,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런 싸움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다.

그러나 나는 다른 감정을 안다.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다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감정, 이 학교 담벼락에서 나 홀로 서 있는 듯한 감정, 이대로 나만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지 하는 감정도 든다. 이 느낌은 나 홀로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청소년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87년 민주화 이후로 벌써 4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유독 학교의 시계는 느리게 흐른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소중한 제도적 민주주의를 얻어냈지만,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공간이며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공간이지만 정작 그 어디보다 비민주적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다.

학교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아직 이 사회에 민주주의가 왔다고 할 수 없다. 학교에 민주주의가 올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다시 말할 수 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외쳐야만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되새기며 글을 마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민주주의 #교내민주주의 #학생인권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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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글쓰기. 문의는 j.seungmi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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