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 외벽에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다가오는 설연휴 직접 방문을 자제하고, 세배는 온라인으로 하자는 '설 연휴, 찾아 뵙지 않는게 '효'입니다' 거리두기 캠페인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권우성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누군가는 벌써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원치 않은 이야기로 가족, 친척, 친구들과 안부를 묻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해에는 소망하는 일 모두 이루세요!' 등의 설날 인사말이 서로를 존중하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이번 설날에는 부모님, 친척분들께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요?"
그들 아니 어쩌면 내 자식과 조카, 친구의 이야기도 될 법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생각1] "어머니, 제 생각도 존중해주세요"
김형일(37, 가명)씨는 서울 송파구에서 혼자 자취를 한다. 부모님은 전라도 광주에 거주하시기에 명절이나 휴가에 얼굴을 본다. 그는 지난해 어머니와 통화를 회상하며 말을 전했다.
"지난 추석에 어머니는 지금껏 그랬듯 결혼이야기를 하셨어요. '결혼할 애인은 있니?', '돈은 얼마나 모으고 있니?' 등 이제는 귓가를 스쳐 흘려버리는 말들이요. 저는 그다지 결혼에 관심이 없는데 부모님은 나이 때문인지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물론, 어머니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제 의견만큼 부모님의 생각과 의견도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결혼 생각이 없어요. 결혼하기 싫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빨리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여자친구와 만나면서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싶으면 결혼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를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생각2] "순서가 조금 다른 것뿐 아닐까요?"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최지나(25, 가명)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부산에서 상경했다. 대학생 신분일 때는 작은 아버지, 이모들과 친하게 지내며 명절마다 용돈을 받았다. 하지만 취준생이 된 지금은 그분들의 말을 듣기 힘들어 전화하기 전에 망설이게 된다.
"올해 설날은 코로나19 때문에 친척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할머니 댁에 온 친척 식구들이 모이게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는 취업 이야기가 빠지질 않거든요.
작은 아버지는 '누구는 대기업 들어갔다카데 너는 우얘 됐노? 취업이 힘들어 우야노'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비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작은 아버지,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는 말은 삼가셨으면 좋겠어요'라고요."
[생각3] "코로나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목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정두연(48, 가명)씨는 쉬고 싶은 명절에도 짜증이 난다. 주변에서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평가가 수시로 들려오기 때문이다. 친하다는 게 그 사람에게 무례할 권리를 부여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전 평균 체중보다 많이 나가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게 싫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살이 더 찐 것 같은데? 살 좀 빼야 하지 않겠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화도 나고 짜증도 밀려오죠"
그는 이번 설날에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편히 쉴 예정이다. 코로나19로 그들을 마주하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맛집 탐방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맛집을 찾아다녔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거든요. 코로나가 싫기만 했는데 이럴 땐 유용하게 쓰이네요. 세상 일이란 게 참 오묘하네요."
[생각4] "기다려주세요. 저희도 다 계획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