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어르신
주간함양
김정섭 어르신은 '사과나무떡집' 이전인 '삼성떡방앗간'의 첫 역사를 들춰냈다.
"당시에는 삼성기름집이었지, 그 시절에 떡집은 없었어. 내가 4남4녀 중 장남이었는데 공무원해서는 밥 먹고살기 힘들어서 제대하고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았지."
김정섭 어르신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두부 만드는 기술을 배워 와 논산훈련소에서 두부공장 기술자로 일했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재래식으로 만든 두부를 팔았다. 어르신의 아버지는 같은 양의 콩으로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두부를 만들어냈다.
"하루에 콩 200가마니로 6만 장병이 먹는 두부를 만들었으니 그 기술이 어디 가겠어?"
어르신은 아버지 기술을 아무리 배워도 따라갈 수 없었다고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떡을 팔았는데, 그 당시 가게는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던 김정섭씨를 대신해 아내 이막달 여사가 도맡아 했다.
"나 대신 부인이 일을 다 했지, 고생도 많이 했어. 1남6여 애들도 착하게 모두 잘 키우고."
김정섭씨는 제24회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주자였다. 축구에 워낙 소질이 있어 40대에도 함양군 대표로 활동했다. 후보 선수로는 57세 때까지 이름을 올렸다. 김정섭씨는 함양군 생활체육회 초대회장부터 5대까지 역임했으며 생활체육회 중앙회 창립발기인으로도 참여한 체육회의 산 증인이다.
"94년, 95년을 잊을 수가 없어. 함양체육회 생긴 이래 처음으로 도 대회 우승을 연달아 했으니."
당시의 영광을 회상하는 어르신의 눈이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