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 정홍일, 유미 대결전(21. 2. 1. 회차)
JTBC
다른 경연 프로그램과 달리, 기존에 앨범을 발표했던 경력이 있으나 대중에게 '잊힌 가수'를 소개한다는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매우 매력적이다. 귀에 익숙한 노래를 부르는 처음 보는 원곡 가수를 만날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물론 앨범을 냈으나 노래도 가수도 알려지지 않았던 참가자들도 있지만, 그들이 쌓아온 내공은 노래 속에 고스란히 녹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프로그램의 초중반까지는 음색이 독특하거나 특이한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이가 바뀌었다. 이제 응원하는 가수는 29호 가수로 알려졌던 '정홍일' 가수와 33호 가수로 알려졌던 가수 '유미'이다.
나는 가수 정홍일을, 남편은 유미를 응원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회차에서는 두 가수가 1:1 매칭이 되었다. 두 가수는 완전히 다른 장르를 노래하는 가수였고 이번 무대 또한 서로 완벽히 다른 무대를 보여주었다. 가수 정홍일은 정통 헤비메탈 가수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가수 유미는 프로 가수여도 감히 도전하기 힘들다는, 피아노 반주와 목소리만으로 절절한 무대를 보여 주었다.
경연 프로그램 특성상 반드시 다음 라운드로의 진출자와 탈락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탑 10까지 오른 참가자들이라면 이미 검증된 실력일 테니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무대를 보고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분명히 내가 응원하던 가수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으니 기뻐야 마땅했지만, 이번 대결 결과는 기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이 보던 남편은 더했나 보다. 가수 유미를 응원하던 사람이었으니 더 그랬을 수밖에 없을 테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바라보는 두 가수에 대한 애정은 그동안 프로그램 안에서 보아온 그들의 스토리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 주는 감동
바야흐로 '부캐(부 캐릭터)'의 시대이다. 유명 개그맨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원래 자신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 도전을 보여주면서 부캐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어주었다.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역할이나 직업 외에 또 다른 무엇인가 되어야 할 것만 같다. 그냥 '해오던 대로의 나'로만 존재한다는 것은 왠지 허접하고 찌질한 느낌마저 준다.
"그래, 너는 알겠어. 그럼 너의 '부캐'는 뭐야?"라는 질문에 당장 하나 이상은 답할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1만, 더 나아가 2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하며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고 배워온 내 세대에게 '지금 나와는 다른 부캐'라는 것 자체가 가당키나 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일이다.
그래서인가 보다. 남편과 나에게 가수 정홍일과 유미가 특별했던 것은.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대중들이 크게 알아주지 않았어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더러는 외로웠을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이다.
"이 무대만큼은 제가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가수 정홍일이 노래하기 전에 언급한 이 말은, 20여 년간 지켜온 자신의 영역에 대한 자신감이자,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었다. 경연의 무대임에도 화려한 조명이나 반주의 유혹을 내려놓고 피아노 반주에만 자신의 목소리를 담담히 얹어 노래했던 가수 유미도 그렇다. 오랜 시간 자신이 지켜온 '자신만의 노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도전하기 어려웠을 일이었을 것이다.
한 살 터울의 이 40대 가수들이 경연을 떠나 자신들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랑하고 지켜온 것을 보여주는 무대. 그곳에 그들의 '진정성'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들의 무대를 숨죽여 지켜보던 사람들의 심장이 터질 듯한 감동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들에게 다른 부캐가 필요한가? 자신의 영역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 앞에서 얕은 잔재주 가득한 부캐는 오히려 허접하고 찌질하다. 나와 남편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그들이 지켜온 '그들의 세상'에 무한 응원을 보내며 동시에 위로를 받는 이유이다.
잔망스러운 부캐를 가지지 못한 것을 걱정할 일이 아니라, 지금 '나의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깊이 있는 사람인지 먼저 들여다볼 일이다. 그러고 나서 부캐는, 말 그대로 '부 캐릭터'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면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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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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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수들이 준 감동... '부캐'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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