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 삶의 진실, 내 존재의 진실과 만나려는 치열한 탐색이자 험난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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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가 수련을 하게 된 사연도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높고 욕심이 많았으며 성취를 목말라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근거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늘 나 자신에게 불만스러웠다. 무언가를 잘해서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무언가를 이루어서 성취한 부분에 한해서만 내가 나를 긍정할 수 있었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고민은, 과연 '나'란 무엇이며,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태어난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세상과 우주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으로 점차 깊어졌고, 이러한 질문들의 막다른 끝에서 요가를 만나게 되었다.
이 세상의 첫 요가수행자는 구도자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인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 희열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보니, 이별이나 죽음으로 연인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던 남자는, 그 집착과 공포를 극복하고자 자기의 내면으로 침잠하여 각고의 수련 끝에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궁극적 환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참고).
이렇듯 요가란 속세를 초월한 사람이 한가롭게 즐기는 여가 활동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모든 시공간에서 만나는 모든 사건을 통해서 삶의 진실, 내 존재의 진실과 만나려는 치열한 탐색이자 험난한 싸움이다.
요가의 창시자나 부처가 아닌 이상, 감히 '완성'을 말할 수 없는 수행의 길에서 수련자는 여전히 욕망과 아집을 쥐었다 놨다 하며 한걸음씩 한걸음씩 힘겹게 나아갈 뿐이다.
그러니 비싼 회비를 내고 잘 꾸며진 센터에 등록했다고 해서, 혹은 요가복을 입고 멋드러진 아사나를 해냈다고 해서 요가 수행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요가를 배워본 적도 없고 요가 매트 위에 앉아본 적도 없다고 해서 요가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꽁꽁 뭉친 마음을 녹여내기 위해 우선은 몸부터 유연하게 만들어보고자 하는 수련이 아사나일 뿐, 이 세상엔 요가 선생보다 몸은 뻣뻣해도 마음의 길은 훨씬 더 부드럽게 흐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아마도 요가가 아닌 다른 수행의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수련의 최고 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