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식 급식 메뉴
국방부
"와, 오늘 돈가스다. 선생님, 스파게티랑 치즈볼도 나와요!"
"그래? 이따가 많이 먹어라. 선생님 것도 줄게."
교실 앞 게시판에는 연간학사일정, 주간계획서, 수행평가 계획서, 화재대피 계획서, 학교 평면도 등이 있다. 그중에 학생들이 제일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건 '월별급식 계획서'다.
난 채식주의자다. 2000년 교사발령을 받고 처음 담임이 된 후 아이들과 프로젝트 수업을 하고 싶었다. 여러 영역을 검토하다 선택한 것이 '환경교육'이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환경 관련 책들을 대출받아 보았다. 그걸로는 성에 안 차서 인터넷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봤다. 영상 추천 알고리즘 덕에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구절이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되면 지구환경보전에 도움이 된다.' 최소한 아이들과 환경프로젝트를 하면서는 채식주의자로 지내려고 했다. 그러면서 페스코(pesco-vegetarian, 육류는 먹지 않고 물고기와 동물의 알, 유제품은 먹는 채식주의자)로 7년, 비건(vegan, 고기·우유·달걀도 먹지 않고, 동물에게서 원료를 얻는 제품도 사용하지 않음)으로 10년 넘게 지내왔다. 지금은 회식처럼 남들과 같이 식사할 때만 페스코로 지내고 있다.
급식 시간. 돈가스와 돼지고기를 간 스파게티 소스가 버무려져 나왔다. 이럴 때는 오이 피클에 스파게티면만 우걱우걱 씹다 나온다. 현재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교 급식에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학생과 교직원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부 시·도교육청은 10년 전부터 실시해온 곳도 있다. 전북교육청은 학교가 '채식의 날'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고, 인천시교육청은 '채식 선택 급식 선도학교'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울산교육청은 '월 1회 채식의 날' 실시를 권장하고 시범학교를 운영하며 '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을 매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채식선택제'를 시범 운영하고 경기도교육청은 '2021 교육급식 정책 기본 계획'에서 생태와 환경 기후위기대응 교육과 연계한 급식 운영으로 생태·환경 급식학교는 '채식식단 제공'을 권장하고 있다.
문제는 계획서와 현실과의 괴리감이다. 대량으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소수를 위해 따로 조리하고, 조리도구를 분리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학교 구성원인 학생, 교직원, 학부모의 협의가 필요하지만 학교급식에서 '채식 선택권' 보장 개념이 아직 희박하다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을 여행하다 보면 학교는 물론 음식점에서도 항상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있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많은 사람이 고기를 먹는다고 소수자도 누려야 할 '음식 선택권'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유·초·중·고등학교 12년 이상 '음식 선택권' 개념도 모르고 지내다 성인이 되는 것과, 소수자인 채식주의자를 위해 채식을 제공하는 학교에서 늘상 보고 자라온 나라의 학생들이 성인이 되면 이 두 나라의 성인들은 과연 사회적 약자와 소수인 자들에 관해 어떤 생각이 머리속에 자리 잡고 있게 될까 궁금해진다.
올해 2월부터 급식배려병사(엄격한 채식주의자와 무슬림)에게 비건식을 매 끼니 제공한다고 국방부는 발표했다. 우유도 두유로 제공하는 시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군대에서도 소수자인 채식주의자와 무슬림을 배려하는 신호탄을 쏘았다.
이제 학교도 학생과 학부모와 교직원이 민주적인 협의를 통해서 '채식 선택권'이라는 작은 신호탄을 쏘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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