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선물 상자를 받아 들고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좋아 보일 때가 있을 뿐이다.
황승희
프리랜서는 요일 감각만 없는 게 아니다. 친척을 만나는 게 불편해 명절을 혼자 지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명절 감각도 없어졌다. 회사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 년에 두 번, 선물 상자를 받아 들고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좋아 보일 때가 있을 뿐이다.
퇴사하고 백수의 소양을 갖추려면 중고나라 애용자가 돼야 한다. 명절 2~3일 전부터 스팸 상자가 매물로 엄청 올라온다. 그제야 '아 명절이구나'라고 실감한다. 명절이 지나고 산처럼 쌓인 분리수거장의 빈 과일 상자를 보면 '나도 저런 거 받을 때가 있었는데' 하며 그 자리에서만큼은 조금 부럽다.
회사 생활은 전혀 그립지 않은데 쌓아놓고 며칠을 실컷 먹었던 그 명절 참치캔 맛은 그립긴 하다. 참치캔이 엄청 사치품은 아니니 내 돈 주고 사 먹어도 그만인 것이지만 모름지기 선물이란 받아서 맛 아니겠는가.
선물의 맛은 주는 데 있다
명절이면 나도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회사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와 식당 영양사님, 요리사님들이었다. 아주 작은 선물이지만 회사 다니는 내내 잊지 않았었다. 평소 감사한 사람에게 작게 마음을 주고받는 것을 명절에 하면 좋지 아니한가. 선물의 진짜 맛은 주는 데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를 지켜주고 청소해주고 맛있는 밥을 해 주시는 분들, 낮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항상 고마움이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우리는, 적게 버는 노동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 사회 재생산과 유지에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에 진짜 필요한 일을 하니까 고소득 노동자가 많이 벌겠지' 하는 생각이 깨진 계기라고도 한다. 소위 그림자 노동이라고 말하는 각종 돌봄 직종이 그동안 얼마나 저평가되었나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선물을 드리면서 알게 되었다. 그분들 모두가 정직원이 아니라 명절 선물 대상에서 제외란 것을 말이다. 그다음 해엔가부터 한솥밥 먹는 사람에게 모두 다 같이 명절 선물이 지급되었다. 다행이었다. 사소한 차별이 더 치사한 법이니까.
갑자기 그분들과의 소소한 추억이 떠오른다. 청소 아주머니와 모닝 커피 한 잔 하며 화장실에서 나누던 이야기들, 요양보호사 준비하신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셨을까? 혼자 산다고 직원들 몰래 챙겨주시던 식당 아주머니의 누룽지도 생각났다. 퇴사하고 몇 달 지나 업무상 방문했을 때 경비실 서랍에 챙겨둔, 퇴사 후의 내 우편물들을 보고는 뭉클했다.
내가 기프티콘 대신 택한 것
나에게 이번 명절은 유난히 사람이 그리운 시기였다. 사실 명절뿐이 아니다. 두어달째 계속 그런 중이었다. 집합 금지로 사람들과 같이 하는 취미생활이 모두 멈추었다. 프리랜서에게 취미는 밥과 같은 것. 그거 하려고 퇴사했건만 빠삐용도 아닌데 방구석에서 혼자 하는 취미만 하고 있다.
일까지 줄어들어 완전 백수 상태가 된 지 몇 달째이다. 여하튼 사람도 그립고 명절 기분도 내고 싶었다. 비록 회사는 이제 없지만 감사하게도 내 명절 선물을 받아줄 친구는 남아있다.
SNS 문자로 기프티콘 선물하기는 가끔 하는 편이다. 사실 기프티콘을 처음 사용할 때는 이것이야 말고 정말 필요한 것이라며 환호했다. 서로 시간을 따로 들이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주고받는 데는 딱이었다. 멀어서 또는 바빠서 못 만나는 친구나 대면하지 않고 마음을 전달할 대상에게 굉장히 효과적이다.
그런데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관계가 너무 간편하게 해결되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가 그렇게 간단하게 쌓은 우정은 아닌데 기프티콘으로 친구의 기념일을 챙기다 보니 우리 사이도 덩달아 간단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편하게 마음을 전달하면서부터 만나는 횟수도 사실 줄은 면이 없지는 않지 않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못 만난다는 마음의 빚을 기프티콘으로 탕감 받고 싶은 심리일까, 고민해본다.